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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도사의 예언

《붕어도사의 옥수수와 GGM – 뿌린 대로 나는 바람》

두렁 2025. 5. 20. 10:12

 

1.

비가 지나간 뒤, 흙이 말랑해졌다.
텃밭에 뿌려둔 옥수수 씨가 비를 먹고 살짝 부풀어올랐다.
작은 물결처럼, 흙 속에서 꿈틀대며 생명을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밭을 둘러본다.
무언가를 가꾼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기다리면서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면서도, 다시 물을 준다.

그 모순된 태도가 이상하게 GGM을 떠올리게 했다.
광주형 일자리 말이다.


2.

5년 전, 이 도시에 ‘공장이 온다’는 말이 돌았다.
자동차를 만든다고 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 거라고 했다.
청년들이 돌아올 거고, 광주 경제가 살아난다고 했다.
대통령이 와서 테이프를 끊었고, 시장이 기뻐 날뛰었으며, 언론은 ‘광주의 기적’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공장을 신전처럼 여겼다.
공장 부지에 가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렸다.
그런 모습은 어쩐지 **‘카고 컬트(Cargo Cult)’**를 떠올리게 했다.

하늘에서 비행기 타고 온 물자(카고)를 기리던 태평양 섬의 신앙처럼,
우리는 뭔가 외부에서 내려올 줄만 알았다.
노사 상생, 중견기업, 일자리, 미래차, 그런 단어들이 뿌려진 옥수수 씨앗처럼 땅에 묻혔다.

문제는… 물을 안 줬다는 거다.


3.

나는 옥수수를 심으면 그 위에 덮는 흙 두께를 아주 조심한다.
너무 얕으면 햇빛에 바로 말라 죽고, 너무 깊으면 싹이 못 튼다.
적당해야 한다.

GGM은 너무 깊었다.
정치적 수사로 흙을 덮고 또 덮었다.
민주당, 기아차, 지역경제, 청년실업, 일자리 숫자.
그 말들로 겹겹이 덮었다.
싹이 나올 수 없는 흙이었다.

그 위에선 물도 주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건 공장의 생태였다.
어떤 차를 만들고, 누가 사고, 어떻게 팔고, 지속 가능한가?
아무도 진지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신앙처럼 기다렸다.


4.

텃밭은 매일 다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날씨가 돕지 않으면 헛일이다.
그렇다고 날씨 탓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것도 헛일이다.
결국, 해야 할 몫은 해야 한다.

그 몫을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면 안 된다.
그건 **‘선화신앙’**이다.
신은 선하니 결국 잘될 거라는 믿음.
그러니 지금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 ‘광주의 기적’은 올 거라고 생각한다.

GGM을 지금 와서 정치권이 책임지라 한다.
기아차가 책임져야 한다고도 한다.
늦었다.
우리는 이미, 스스로 가꾸지 않은 텃밭에서 쭈글쭈글한 옥수수를 수확하게 생겼다.


5.

붕어도사를 기억한다.
그는 5년 전, 작은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 공장은 바퀴를 달았지만 방향이 없다”고 썼다.
웃었다. 다들 웃었다.
무슨 붕어가 예언을 하냐며.

그런데 지금, 붕어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건 예언이 아니라 관찰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흐린 방죽 속을 오래 들여다봤을 뿐이다.
정치인은 박수를 치고, 언론은 홍보자료를 쓰느라 바빴지만,
붕어는 그냥, 흐름을 봤다.


6.

지금도 나는 아침마다 텃밭에 간다.
옥수수 이파리가 어느새 손바닥만큼 자랐다.
햇빛이 좋으면 조금 더 자라고, 비가 오면 잎이 반짝인다.
그걸 보며 생각한다.

내년에는 두 줄 더 심을까?
올해보다는 줄 간격을 넓혀볼까?

공장을 가꾼다는 건, 사실 농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래를 심는 일은 불확실하고 느리다.
확신은 없지만, 확인은 한다.
계속 들여다보고, 손질하고, 의심하면서도 돌보는 일이다.

그걸 하지 않고 ‘신앙’만 품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7.

광주형 일자리도, 옥수수도, 결국은 뿌린 대로 나는 바람이다.
좋은 바람만 바라는 건 허망한 일이다.
우리는 제 손으로 흙을 일군 적이 있는가?
물은 제대로 줬는가?
덮은 흙은 너무 무겁진 않았는가?

붕어도사는 여전히 그 방죽에 있다.
우리에게 물을 건넨다.

“가꾸지 않은 것은 수확되지 않는다.
기다리기만 한 것은, 결국 신앙이 아니라 방임이다.”

 

텃밭에서-옥수수 씨앗

 

텃밭에서-옥수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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