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무등산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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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소설 <지리산>

소몰이 by The Tribe of Shaman-Cross Cutor Cult 十巫王劍士

두렁 2025. 4. 1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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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담배꽁초를 쓸고 있는 아저씨를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사진까지 찍고 말았다. 정작 나한텐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인데, 왜 이리 끌리는 걸까. 나는 이 참견의 연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생각해 보면,'소몰이'에서 체득한 습성인 듯싶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일곱 살 무렵부터 나는 소 고삐를 잡았다. 당시 소를  몰 줄 안다는 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랐다는 뜻이기도 했다. 고삐를 앞에서 잡아끌든, 뒤에서 몰든, 소는 사람을 따라 논밭을 오갔다. 물론 말 안 듣는 놈도 있었지. 콩밭에 코를 박고 콩을 훔쳐 먹거나, 해찰을 부리다 싸리나무로 엉덩이를 맞곤 했다.

 

이라, 이라!”

 

좌라, 좌라!”

 

회초리를 들고 외치면, 대부분의 소는 방향을 틀었다. 코뚜레도 안 한 송아지들은 회초리를 맞고도 어리둥절한 채 이리저리 날뛰었다. 나는 열 살, 열두 살이 되며 동네 마흔 마리도 넘는 소떼를 혼자 몰게 되었다. 송아지가 태어난 날이면 열 번도 넘게 숫자를 세고, 도망친 소가 있나, 옆 동네 소랑 섞였나 확인하며 산길을 누볐다.

 

한 번은 옆집에서 암내 나는 암소를 밖에 풀어놓는 바람에, 수소들이 미쳐 날뛰어 소떼가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그러고도 혼나야 했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소보다 못한 사람을 본다고. 담배 피우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꽁초를 서점 앞길바닥에 던지고 가는 놈을 보면, 뛰쳐나가서 따귀를 올려붙이고 싶다. 마치 소 엉덩이를 회초리로 후려갈기듯, 사정없이.

 

소를 몰아본 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그 차이가 드러나는 것 같다. 어릴 적 쟁기질을 해보고, 무논에 들어가 쓰레질을 했던 사람이 예순이 넘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나처럼, 아무도 시키지 않은 청소를 하거나, 그걸 멀리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을지도 모르지.

 

 

혹시 이 글을 에세이집이나 소설 모음집에 넣을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다른 장면이나 주제와도 엮어서 확장해보고 싶으신가요?

 

4o ChatGPT

 

 

소몰이


The Tribe of Shaman-Cross Cutor Cult 十巫王劍士

 

 

빗자루 소리가 뒷골목을 적신다.

 

사박사박, 툭툭, 사박.’

 

아침 햇살보다 먼저 거리를 청소하는 한 남자. 허리 굽힌 그 모습이, 꼭 고삐를 잡은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장면을 한참이나 지켜보다 사진을 찍었다. 평소 같았으면 스쳐 지나쳤을 풍경이다. 그런데 왜 하필 오늘, 그 광경에 마음이 멈췄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 왜 거기 멈춰 서 있었냐.'

 

아무런 이득도 없었다. 사진 한 장, 묵은 먼지와 담배꽁초 몇 개. 그런데도 나는 무언가 중요한 걸 본 것처럼, 한참이나 서 있었다. 그건 아마도 오래전, 내 유년의 어떤 습관이 작동한 결과였을 것이다. 나는 그걸 소몰이 본능이라 부른다.

 

내가 소를 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이었다. 어머니는 마당에서 쌀을 씻고 불을 지피던 시절. 나는 여덟 살 꼬마였고, 어느 날부터인가 자연스레 소의 고삐를 잡고 있었다.

 

고삐를 잡는다는 건 단순히 소를 이끄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존재라는 선언이었다. 소는 나보다 몇 배나 컸고, 힘도 셌다. 그러나 나에게는 회초리와 입담이 있었다.

 

이라, 이라!”

 

좌라 좌라!”

 

소는 나의 말귀를 알아들었다. 적어도 그런 착각을 하게 만들 만큼 나름의 룰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말 안 듣는 놈이 있었다. 송아지, 코뚜레도 하지 않은 놈은 종종 나를 무시했다. 콩밭에 코를 처박고 콩을 날름대던 그놈에게 나는 회초리를 휘둘렀다. 그래도 녀석은 혀를 낼름이며 해맑았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나는 동네 소떼를 혼자 몰았다. 마흔두 마리. 한 마리라도 빠지면 안 됐다. 송아지가 태어난 날은 더 힘들었다. 숫자를 세고 또 세며, 혹시 빠진 놈은 없는지, 옆 마을 놈이 섞인 건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산기슭에서 음매소리가 나면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옆집에서 암소를 몰래 내놓은 날이었다. 암내 나는 암소를 맡은 수소들이 그만 미쳐버렸다. 우리 마을 수소 몇 놈이 따라붙더니, 이리저리 날뛰며 소떼를 흩뜨렸다. 그날 나는 울면서 소를 쫓았다.

 

그렇게 나는 사람과 짐승을 구분 짓는 감각을 배웠다. 책임이라는 말은, 울면서도 해야 할 일을 끝내는 마음이라는 것도.

 

오늘 아침 거리의 아저씨가 떠오른다. 그도 아마 누군가의 소를 몰았을 것이다. 아니면, 아직도 자기 안의 고삐를 잡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소보다 못한 인간도 많다. 담배를 피우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꽁초를 책방 앞에 툭, 하고 던지는 인간을 보면 뛰쳐나가 뺨이라도 때려주고 싶어진다.

 

이 자식아, 너 소몰이라도 해봤냐?”

 

소는 적어도 똥은 가린다.

 

소는 적어도 누가 고삐를 잡았는지 안다.

 

사람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길바닥에 꽁초를 던지고 가는 자들. 그들에게는 회초리가 필요하다. 아니, 그들에게는 한 번쯤 소몰이 체험이 필요하다.

 

나는 오늘 아침 내게 다시 묻는다.

 

, 왜 거기 서 있었냐.”

 

아마도, 나는 여전히 고삐를 놓지 못한 사람인가 보다. 소의 똥냄새와 마른 짚, 발굽 자국, 그 모든 것들이 내 뼛속에 박혀 있는 것이다. 나는 소떼를 잃어버리던 열두 살 아이의 마음으로, 오늘 아침 꽁초를 줍는 아저씨의 어깨를 본다.

 

어쩌면 우리 모두, 잃어버린 소 한 마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