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무등산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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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기

찔레꽃과 작약꽃 사이에서—텃밭에서 다시 만난 유년의 하얀꽃빛

두렁 2025. 5. 19. 09:34

 

 

아침 책방 출근길에 잠시 들린 텃밭.

 

찔레꽃은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온다. 들길과 논둑이 여름빛으로 물들기 직전, 허기와 흙먼지가 뒤섞여 있던 그 시절의 냄새를 데려오며 하얗게 핀다. 학교에서 십리길을 걸어 돌아오면, 모내기 준비로 북적이던 마을 뒷산 골짜기에서 나는 찔레순을 먼저 찾았다. 집엔 먹을 것이 없었고, 허기를 씻어 줄 것이라곤 길가 우물물과 찔레 새순뿐이었다. 나는 찔레꽃 덤불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얀 꽃덤불 가시 아래 숨은 찔레순을 찾아 입에 넣어야 했다.  소나무껍질을 벗겨 씹던 맛이 아직도 혀끝에 남아 있다. 그때 내 얼굴엔 영양실조가 피운 버짐이 하얀 점처럼 번졌고, 흙을 파헤쳐 본 감자는 내 불알보다도 작아 먹을 수 없었다.

 

오십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무등산 자락의 작은 책방으로 출근하는 길에 텃밭에 들른다. 그곳에선 진분홍 작약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풍요로운 꽃잎은 허기를 모른다. 그러나 작약 뒤편, 찔레는 여전히 순박한 얼굴로 서 있다. 하얀 꽃송이는 시절의 빈 주머니를 기억하듯 소박하고, 가시마저도 그리움으로 무뎌 보인다.

 

작약과 찔레가 한 자리에 서 있는 풍경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놓인 한 컷의 필름 같다. 한쪽은 배고팠던 시간, 다른 한쪽은 먹기 싫어 남기기까지 하는 세상. 가난은 사라졌지만, 찔레꽃이 전해 주는 허기의 냄새는 아직 코끝에서 선연하다. 그 냄새 덕분에 나는 오늘의 풍요를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그래서 찔레꽃은 내게 ‘버려야 할 기억’이라기보다, 내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알려 주는 흰 이정표다. 작약이 보여 주는 넉넉함 속에서도, 찔레가 속삭이는 결핍의 언어를 잊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온전한 균형을 찾는다. 풍요와 결핍은, 작약의 진분홍과 찔레의 순백처럼 서로의 색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오늘 저녁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다시 찔레순을 찾아 볼 작정이다. 달착지근한 맛이 혀끝에 퍼질 때, 그 허기는 추억으로만 남지 않고 오늘의 나를 더 단단하게 해 줄 것이다.

 

찔레꽃이 피어 있는 한, 그 배고픈 봄은 내 안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작약이 만개한 아침의 풍요도, 그 봄 위에 핀다.

 

<무등산>(4월)에 이어 <지리산>(5월) 몽당소설 2번째 출간 목차/원고(.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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