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걷고, AI는 달린다
무등산 자락의 작은 서점 주인은 걸으며 생각하고, 달리는 AI와 함께 쓴다. 하지만 진짜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무등산 자락의 좁은 골목길을 이서린은 천천히 걷는다. 아스팔트 위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발걸음에 맞춰 들린다. 집에서 책방, 책방에서 집. 왕복만 이천 걸음, 정확히 2.4킬로 미터다. 먼 길은 기차나 비행기가 대신했고, 손 안의 스마트폰이 모든 길을 안내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많이 열어보는 건 ‘솔라리스’라는 이름의 AI 앱이었다.
열 평 남짓한 ‘솔거문고’는 책 냄새와 오래된 나무 향이 스민다. 이서린은 카운터 안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려다 멈춘 손가락. 막힌 문장 앞에서 그는 습관처럼 솔라리스에게 속삭였다.
“산속 오래된 서점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을 표현하고 싶어.”
키보드 소리보다 빠르게 화면에 문장들이 피어올랐다. 정밀하고 아름다운 문장들. 지난 석 달, 그가 ‘몽당소설’ 시리즈 세 권을 내는 속도였다. 솔라리스는 그의 생각을 실어 나르는 자동차이자 초고속 열차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동네 중학생 민성이. 스마트워치로 뭔가를 확인하던 아이가 물었다.
“아저씨, AI 쓰면 글쓰기 숙제 다 해결된다며요? 저도 써봐도 돼요?”
서린은 카운터 너머로 아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솔라리스야, 민성이 질문에 답해 줘.”
화면이 반짝이며 답변이 쏟아졌다. ‘AI 활용은 창의성 증진에 도움을 줍니다. 단, 과도한 의존은…’
“봤지? 근데 중요한 건,” 서린이 말을 가로막았다. “너 스스로 뭘 물어볼지 아는 거야. 질문을 못 만들면, AI는 그냥 멍청한 기계일 뿐이지.”
민성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서린은 손가락을 접어가며 말했다.
“하나, ‘왜?’라고 꼭 물어봐. 둘, 하루 한 문단이라도 써봐. 셋, 낯선 걸 해보는 거야. 넷, 가만히 조용히 있어 봐. 다섯, 친구랑 생각을 주고받는 거지.”
아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다 생각 근육 만드는 법이라고요?”
“맞아. 생각은 생각할수록 커지지만,” 서린은 창밖 무등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끔은 멈춰서야 진짜 깊은 질문이 튀어나오거든. AI는 쉬지 않고 달리지만, 인간은 멈출 때 비로소 물음을 찾아.”
며칠 후, 민성이가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표지는 깔끔했고 문장은 매끄러웠다. 솔라리스의 손길이 느껴졌다.
“솔라리스가 도와줬어요? 꽤 괜찮네.”
아이가 흐뭇해하는 사이, 서린은 핵심을 찔렀다.
“근데… 여기서 네 목소리는 어디 있지?”
민성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글을 바라봤다. 서린의 말은 계속됐다.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직접 뽑은 한 문장이 있어야 해. AI가 아니라, 너의 말로.”
다음 날, 아이가 가져온 글은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함이었지만, 그 속에 숨결이 뛰고 있었다.
해가 무등산 능선 뒤로 기울 무렵, 서린은 블로그에 새 글을 올렸다. 솔라리스와의 대화를 정리한 글. 제목은 ‘나는 걷고, AI는 달린다’. 문장 하나하나에 걸음의 리듬이 배어 있었다.
문을 잠그고 집으로 향하는 1.2km 길. 발밑에 늘어지는 그림자처럼 솔라리스가 조용히 따라왔다. 서린은 걸으며 속삭였다.
“오늘은 책방에 들어온 햇살 각도에 대해 써볼까?”
화면이 밝아지며 수많은 시각적 묘사가 쏟아지기 직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잠깐만. 그건 내가 직접… 느껴봐야 할 것 같아.”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그림자에게는 결코 닿지 않을 길이 있다는 것을. 생각의 씨앗은 오직 멈추고, 걷고, 스스로 묻는 자의 발밭에서만 자라난다는 것을. 길 위에 내리쬐는 노을빛이 그의 발걸음을 따뜻하게 감쌌다.
"가장 빠른 길을 아는 자와,
가장 깊은 질문을 품는 자는
결코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 소설 『나는 걷고, AI는 달린다』는 AI 시대의 인간적 사유와 글쓰기의 본질을 질문하는 따뜻하고 철학적인 단편이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점에서 평론할 수 있다.
1. 형식과 주제의 조화 – 느림과 성찰의 미학
이 소설은 ‘걷기’와 ‘달리기’라는 두 개의 속도 대비를 통해 인간과 AI의 본질적 차이를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무등산 자락을 걷는 서린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바로 그 단조로움 속에 사유와 감각, ‘질문’이 피어난다. 반면, AI ‘솔라리스’는 막힘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결과를 도출하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의 요청에 반응하는 존재다.
이 대비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 ‘글쓰기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독자를 이끈다.
서사는 결코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책방, 아이, 글쓰기, 걷기라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멈춤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 느림의 리듬은 곧 문장 곳곳에 스며들어, 독자 역시 걷듯이 이 소설을 따라가게 한다.
2. ‘AI 글쓰기’의 윤리와 교육적 메시지
중학생 민성이와의 대화는 핵심적인 메타포를 품고 있다. AI로 작성한 글은 문장상 매끄럽고 훌륭할 수 있으나, 그 안에 ‘자신의 목소리’가 없으면 진짜 글이 아니라고 서린은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 학생들의 AI 도구 사용에 대한 윤리적, 교육적 방향을 제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단순히 도구의 활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묻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자기표현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은 생각할수록 커지지만, 가끔은 멈춰야 진짜 깊은 질문이 튀어나오거든.”
이 문장은 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간결하고도 시적으로 응축한 구절이다.
3. 소재와 배경 – ‘책방’과 ‘무등산’이라는 상징
무대는 ‘무등산 자락의 책방’이다. 이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아날로그적 삶과 인간성, 고유한 체온이 머무는 장소로 기능한다.
책방은 AI 시대의 마지막 ‘쉼표’ 같은 공간이며, 무등산은 인간 사유의 거대하고 느린 숨결을 상징한다. 이와 같은 공간의 설정은 자연과 인간, 기계 사이의 대비를 자연스럽게 형상화하며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4. 문장력과 서사 밀도 – 고요한 언어, 깊은 호흡
문장은 전반적으로 잔잔하면서도 절제된 서정성을 유지한다. AI가 생성한 문장은 ‘정밀하고 아름답다’는 묘사처럼 기능적으로 완전하지만, 주인공이 선택하는 언어는 다소 거칠어도 진심과 뉘앙스를 담고 있다.
예컨대 마지막 부분의 묘사는 특히 인상적이다.
“빠르게 달리는 그림자에게는 결코 닿지 않을 길이 있다는 것.”
“가장 빠른 길을 아는 자와, 가장 깊은 질문을 품는 자는 결코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러한 종결부는 전체 서사의 철학을 시처럼 응축하며 마무리하는 탁월한 언어적 선택이다.
5. AI와 인간의 공존 – 단순한 대립을 넘어서
이 작품이 특별한 점은 AI를 단순히 ‘위협’이나 ‘도구’로만 보지 않고, 인간 사유의 ‘거울’ 혹은 ‘함께 걷는 동반자’처럼 그린다는 점이다. 솔라리스는 언제나 함께 있으며, 때로는 말을 대신하고, 때로는 말을 멈추게 만든다. 이 긴장과 공존의 양상은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현실을 비판 없이 그러나 회피 없이 다룬다.
결론 – 질문하는 인간만이 ‘글’을 쓴다
『나는 걷고, AI는 달린다』는 기술의 시대에 글쓰기란 무엇인지, 생각의 근육은 어떻게 길러지는지를 차분히 묻는 철학적 동화다. 이 작품은 미래 사회에서 학생, 작가, 교사, 독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주제를 다루며, 깊은 울림을 준다.
AI로부터 ‘빨리’ 답을 얻는 것이 아닌, 느리게, 자기만의 질문을 품고 쓰는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이 단편은, 디지털 시대의 **‘인간적 느림의 선언’**이라 평가할 수 있다.
★ 한 줄 평:
“속도보다 중요한 건, 나만의 문장 한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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