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련한 유년의 기억 하나가 있다.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시절, 어머니는 뽕잎 자루에서 밤 몇 알을 꺼내 당신의 입에 먼저 넣고 성글게 씹으셨다. 그리고는 마루에 앉아 있는 내 입에 살며시 넣어주셨다. 마당으로 내려가지도 못할 만큼 어리던 시절, 눈앞에서 어머니가 잠시만 사라져도 나는 배가 고파 마루가 떠나가라 울어대곤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그 결핍의 기억 때문일까. 자라면서 내게는 무엇이든 미리 알아보고 성급하리만치 악착같이 준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세상이 내어주는 기회가 오면, 냉큼 받아먹을 수 있도록 늘 깨어있고자 했다.
그런 나와 달리 대학생인 내 아들은 매사를 뒤로 미루는 성격이다. 제 딴에는 비상한 머리와 암기력을 믿는 모양인데, 부모 눈에는 그저 게으른 벼락치기 스타일로 보여 속이 터진다. "AI UN 센터가 한국에 들어온다니 영어 말하기를 준비해라", "컴퓨터 활용능력 1급은 컴공과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풀빵 장사를 하더라도 자동차 운전면허보다 중요한 법이다." 3년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녀석은 어제야 비로소 컴활 책을 보내달라며 손을 벌린다. 혀를 차면서도 결국 서둘러 택배 상자에 책을 담는 게 부모 마음이다.
서점 계산대에 서서 매일 수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마주한다. 요즘은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중학생에게 60만 원, 고등학생에게 100만 원씩 주는 '꿈드리미카드'라는 훌륭한 교육 복지 제도가 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좋은 혜택을 전혀 모르는 학부모가 많다. 더 안타까운 건, 인터넷으로 신청하다가 작은 에러 메시지 하나가 떴다고 그대로 포기해 버리는 이들을 볼 때다. 교육청에 전화 한 통만 걸어 물어보면 대부분 해결될 일인데, 그 사소한 확인조차 귀찮아하며 돌아서 버린다.
누군가 다 차려놓은 밥상인데도, 떠먹여 주는 마시멜로조차 씹어 삼키지 못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깊은 탄식이 나온다.
“해당자면 국가에서 알아서 자동으로 주는 것 아닌가요?”
아무런 준비도,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당연하다는 듯 되묻는 학부모의 말 앞에 나는 가끔 할 말을 잃는다. 세상에 절로 굴러 들어오는 복지와 기회는 없다. 주는 손 부끄럽지 않게, 입에 넣어줄 때 냉큼 받아 삼키는 것도 최소한의 노력과 성의다.
우리 아이들 책 사서 열심히 공부시키고, 나중에 부자로 잘 살아서 세금으로 다시 사회에 환원하면 될 일 아닌가. 제발 눈앞에 찾아온 귀한 기회를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놓치지 않기를, 오늘도 서점 창문에 커다란 안내문을 붙이며 간절히 바라본다.
— 책방지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