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아침, 무등산 자락 책방 문을 열자마자 종소리보다 먼저 파르르 떨리는 숨결이 밀려왔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아직 완전히 벗지 못한 중학생 특유의 앳됨과, 곧 성인이 될 미래를 향한 조급함이 한 얼굴에 겹겹으로 포개져 있었다. 아이는 문턱을 막 넘자마자 책장 사이를 종종걸음으로 헤집더니, 한 권을 뽑아 든 채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이 책이 맞을까요? 〈라이트센 공통수학1〉이요.”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길을 접었다. 스스로 고른 책을 확신하지 못하는 눈빛―그 불안은, 책방지기인 내게도 낯설지 않았다. 수학이란 벽 앞에서 수없이 주저앉아 본 기억이 내 안에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여 아이를 창가 테이블로 이끌었다. 아침볕이 책 위에 포근히 내려앉자,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페이지가 소리 대신 빛으로 부풀어 올랐다.
1. 개념서와 문제집 사이
아이에게 책갈피 대신 작은 메모지를 내밀었다. ‘개념설명 8 : 문제 2’ 교과서 자습서와 닮은 개념서는 숲을 보여 주는 지도이고, 문제집은 그 숲 속 오솔길을 걸어 보게 하는 신발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아이는 ‘8할, 2할’이라는 숫자를 손가락 끝으로 따라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쉬움·보통·어려움’으로 세분되는 문제집, 그리고 난이도 구분 없이 기출만 모은 수능특강 류까지―허름한 필통에서 색연필을 꺼내 밑줄을 긋는 손이 바빴다.
“그러니까… 제가 어느 길에 서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겠네요.”
아이의 결론은 제법 정확했다. 서 있는 좌표를 모르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지난주에 본 중간고사 성적은 어땠니?”
아이의 목젖이 한 번 불안하게 흔들렸다.
"생각보다… 개념이 잘 안 잡혔더라고요.”
말끝을 흐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실패의 흔적은 늘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나는 그 숙인 고개를 억지로 들게 하지 않았다. 대신 내 손바닥을 책 위에 포개며 말했다.
“그렇다면, 개념을 다시 불러 세워야지. 길을 잃었을 때는 가장 먼저 지도를 펴는 법이니까.”
2. 적합한 책을 고른다는 것
책은 물건이지만 삶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잘 맞는 그릇에 담긴 밥은 식지 않는다. 아이가 고른 〈라이트센〉을 살짝 옆으로 밀어 두고, 나는 서가에서 〈개념센 라이트 공통수학 1〉을 꺼내 왔다. 비슷한 제목, 비슷한 두께. 그러나 페이지를 펼쳐 보자 구성은 확연히 달랐다. 한쪽엔 촘촘히 서술된 설명, 다른 쪽엔 여백을 많이 둔 도식과 예제. 아이의 눈이 이내 밝아졌다.
“저는 설명이 보다 많은 게 좋아요.”
책이 독자를 고른 걸까, 독자가 책을 고른 걸까. 우리는 서로를 닮은 무언가에 자연히 끌린다. 그것이 사람이어도, 책이어도. 나는 계산기 대신 마음속 저울을 꺼내 들었다. 아이가 부담 없이 느낄 무게, 그러나 허술하지 않을 두께. 양손에 두 책을 올려 보곤, 조용히 <개념센 라이트>를 아이 쪽으로 밀어주었다.
3. 선순환이라는 영업 전략
책방 문을 나서며 아이는 두 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진지한 목소리에 벚꽃 잎처럼 가벼운 떨림이 섞여 있었다. 나는 아이의 뒷모습이 코너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서가 정리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응원의 말을 더 붙이지 않은 것은, 책 한 권이 이미 충분한 약속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책방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책을 찾아 나가는 길목이다. 아이가 오늘 적합한 책을 골라 가져갔다면, 다음엔 문제집을 사러, 언젠가는 기출 모음집을 사러 다시 올 것이다. 책이 아이를 성장시키고, 그 성장이 다시 책방 문을 열게 한다. 이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선순환 구조다.
장사꾼의 속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서점이 살아남는 길과, 독자가 성장하는 길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두 길이 맞물려 돌아갈 때, 작은 지역 책방도, 한 사람의 배움도 함께 숨 쉰다.
4. 책갈피에 남긴 당부
그날 오후, 나는 아이에게 빌려 주었던 메모지 뒷면에 한 줄을 더 적어 두었다.
“책은 거울이다. 네가 웃으면 책도 웃고, 네가 고개 돌리면 책도 침묵한다.”
그리고 접은 메모를 〈개념센 라이트〉 첫 장에 꽂아 두었다. 다시 만날 때, 아이가 그 말을 떠올려 주길 바라면서. 책방의 선순환은 결국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고, 한 사람의 노력이 이어 붙인다. 그 작은 바퀴가 돌고 돌아, 어느 날 아이가 수능장 앞에서 웃을 수 있다면―그 웃음이 곧 나의 장사이자, 나의 기쁨이 될 것이다.
저녁 무렵 셔터를 내리며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등산 능선을 따라 뿌려진 붉은 노을이, 마치 오래도록 책장을 비추던 스탠드 불빛 같았다. 오늘 또 한 페이지가 저물고, 내일 새 장이 열린다. 아이가 펼칠 문제집의 첫 장처럼, 책방도 다시 첫 페이지를 준비한다. 그렇게 선순환의 톱니는 조용히, 그러나 쉼 없이 돌아간다.
세상 사는 이치가 책 고르는데도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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