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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소설 <백두산>

몽당소설 : 돼지농장 (2) 화가 난 돼지

두렁 2025. 5. 24. 17:45

“지금 암퇘지가 상당히 흥분된 상태입니다.”

농장주는 마당 너머 철창 안을 가리켰다. 흙탕물 튄 철창 안쪽, 몸집 큰 암퇘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갈색 털은 군데군데 진흙에 젖어 있었고, 뭉툭한 콧구멍에서는 거칠게 숨이 뿜어져 나왔다.

“흥분되어 있다고요? 저를 보고 지금 흥분하고 있다고요?”

방문자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지만, 농장주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지금 모르는 사람이 와 가지고 상당히 흥분된 상태입니다. 보세요, 입을 쩝쩝쩝 거리죠? 저건 지금 '기분 나쁘다'는 표현입니다. 공격 직전 신호일 수도 있어요.”

암퇘지는 눈을 부라리며 바닥을 긁었다. 마치 껌을 씹는 것 같은 입놀림이 이어졌고, 탁탁— 소리를 내며 이빨이 부딪쳤다. 순간, 몸을 크게 부르르 떨더니 허리를 씰룩씰룩 흔들기 시작했다.

“껌 씹는 것 같은데요……. 하하하.”

방문자가 웃자, 농장주는 눈을 흘겼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저 허리 씰룩임은 경고입니다. 지금 굉장히 예민해요. 새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그래요. 건드리면 안 됩니다.”

농장주는 조심스레 철창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손에는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조심조심 다가가며, 익숙한 손길로 돼지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얘는 똑똑해요. 감정도 있고, 자존심도 있어요. 머리 쓰다듬어주면 마음이 좀 풀리죠.”

놀랍게도 암퇘지는 그 거대한 몸을 바닥에 주저앉히더니, 가만히 눈을 감고 쓰다듬을 받아들였다. 털 속에 파묻힌 눈매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허리를 흔들던 동작도 멈췄다.

“보세요. 가만히 즐기고 있죠? 눈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온순해졌어요. 금방 화 풀립니다.”

농장주는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암퇘지의 귀 옆을 살살 긁어주었다. 그제야 돼지는 부르르 숨을 내쉬며, 철창 한쪽에 몸을 기대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져 낮잠을 잘 것처럼 느긋해졌다.

“동물도 다 알아요. 누가 자기를 배려하는지, 누가 적인지. 기분 상하면 며칠이고 안 먹고, 때로는 새끼도 물어요. 다 감정이란 게 있어요.”

방문자는 어딘가 민망해진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처음엔 그저 웃기기만 했던 돼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제는 섬세하고 예민한 감정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이름이라도 있나요? 이 아이에게.”

“있죠. ‘꽃님이’입니다. 꽃처럼 예쁘다고 우리 마누라가 붙였어요. 순하고 똑똑한 아이죠.”

꽃님이는 농장주의 무릎에 코끝을 살짝 대더니,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돼지처럼.

“참 묘하네요. 저도 모르게… 정이 가는 것 같아요.”

방문자가 말했다. 농장주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이든 돼지든, 감정을 알아주고 손을 내밀면 통하는 법이죠. 다만 그걸 모르고 함부로 웃으면, 누구든 화를 내는 법이고요.”

꽃님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철창 밖 봄 햇살이 기분 좋은 듯, 미세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마당 끝에선 갓 핀 민들레가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