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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소설 <백두산>

몽당소설 : 돼지농장 (4) 흥분한 돼지

두렁 2025. 5. 24. 17:51

“그럼 모돈은… 어떤 걸 보고 흥분하나요?”

농장주에게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보통은 ‘응취’—그러니까 남자의 냄새, 향기에 가장 많이 반응합니다. 웅돈, 그러니까 수퇘지의 고환, 이른바 ‘fire egg’가 굉장하죠. 강력한 향기가 나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떱떱떱’ 거립니다. 그 거품이 모돈, 즉 암퇘지의 입과 코 주변으로 흘러 들어가면 호르몬 자극을 시켜 주는 성분이 있어요.”

“호르몬 자극이라면, 암퇘지의 몸 상태가 변한다는 뜻인가요?”

“맞아요. 평상시 분비되는 호르몬이 바뀌면서 흥분 상태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를 보고 흥분하는 게 아니라, 남자를 보고 여자가 흥분하는 거네요?”

“바로 그겁니다. 여기는 암퇘지들이 대부분이라서, 복도에 숫돼지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지금은 임신 중이라 괜찮지만, 임신사나 교배사 쪽에 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죠.”

“임신사요?”

“네, 여기 임신사는 발정이 다시 와서 임신할 수 있는 모돈들만 모아 놓은 곳이에요. 마치 군부대 걸 그룹 같다고나 할까요? 한 곳에 모여서 진짜 조용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죠.”

“왜 그렇게만 있나요?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않나요?”

“그게… 그걸 ‘스톨’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스톨은 많이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왜 농장 시설이 좋은데 돼지를 가둬 놓느냐’고 말하는 분들이 많죠.”

농장주는 농장 한쪽을 가리켰다. 유리창 너머로 긴 칸막이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안에 암퇘지들이 차례로 누워 있었다. 대개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창밖을 보거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둬도 돼지들이 잘 안 나와요. 스톨에 익숙해져서 거기서 벗어나질 않거든요. 그만큼 모돈들이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인 거죠.”

“그럼 암퇘지에게 ‘안정감’과 ‘흥분’은 어떻게 공존하나요?”

“흥분은 냄새 자극에서 시작되지만, 안정감은 공간과 환경에서 결정돼요. 임신 중일 때는 더더욱 편안한 공간이 필요하죠. 농장 안에서 무리 지어 누워있을 때, 서로의 체온과 냄새가 교차하며 안정감을 줍니다.”

“웅돈의 거품과 냄새, 그리고 모돈의 안정된 공간. 신기하네요. 돼지들도 저마다의 세계가 있네요.”

“네. 저희가 돼지를 기르면서 배운 점은, 이 녀석들도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몸이 신호를 보내고, 냄새와 환경으로 감정을 조절해요.”

농장주는 한숨 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이 농장에서는 모돈이 편안한 공간에서 흥분도 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있죠. 이게 돼지 농사의 핵심입니다.”

“오늘 배운 게 많네요. 돼지에게서 인간의 감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맞아요. 돼지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에요. 흥분하고 긴장하고, 때론 불안해하고, 또 토라지기도 합니다. 그런 게 다 농장주가 돌봐야 할 몫이죠.”

복도 끝에서 암퇘지 한 마리가 귀를 쫑긋 세우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고, 농장주는 환하게 웃었다.

“자, 이제 저 녀석도 흥분할 준비가 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