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삐지기도 하나요?”
방문자가 물었다. 농장주는 대답도 하기 전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돼지는 잘 삐져요. 정말 잘 삐져요.”
돼지가 삐진다니, 처음 듣는 사람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농장주는 손짓으로 마당 끝 철창 쪽을 가리켰다. 그 안엔 암퇘지 한 마리가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다. 누가 봐도 ‘토라졌다’는 자세였다.
“쟤 이름이 ‘복실이’인데, 지금 완전히 삐친 겁니다.”
“왜요?”
“음… 설명하자면 좀 길어요. 일단 돼지는요, 발정이 오면 인공수정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사람하고 다르게, 사람은 남자가 정하면 끝인데, 돼지는 여자가 정합니다.”
“여자가… 정한다고요?”
방문자는 어리둥절해했다. 농장주는 더욱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웅돈, 그러니까 수퇘지가 사정을 하려면, 암퇘지가 먼저 흥분해야 해요. 흥분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됩니다. 절대요. 암퇘지가 질을 수축시켜 줘야 웅돈이 사정을 할 수 있어요.”
그는 말하며 복실이 쪽을 한 번 더 바라봤다. 복실이는 여전히 삐친 채, 콧김만 훅훅 뿜어냈다.
“근데 말이죠, 그걸 또 아주 예민하게 결정짓는 게 있어요. 바로 ‘남자’의 향기입니다.”
“향기요?”
“네. 작업자가 전날에 다른 여자를 만나고 왔다? 향수 냄새나 다른 냄새가 나잖아요? 그러면 돼지가 그걸 알아채고는 흥분을 안 해요. 그냥 거부해요. 남자가 아무리 다가와도 고개 돌리고 무시해요.”
방문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요. 농담이시죠?”
“진짜예요. 제가 아는 사삼이라는 작업자가 있었는데, 걔가 연애 중일 때 자주 그랬어요. 전날 여자친구랑 데이트하고 오면 복실이가 바로 반응해요. 삐지는 거죠. 눈 안 마주치고, 음식도 안 먹고, 그냥 들판만 바라보고 있어요.”
“와…… 그럼 그날 수정은 못 하는 거네요?”
“그렇죠. 복실이가 ‘흥’ 해버리면 끝이에요. 그날은 포기해야죠.”
두 사람은 복실이를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기분이 상했는지, 복실이는 등을 들썩이며 철창 구석으로 더 몸을 숨겼다.
“정말 재미있는 동물이네요. 이렇게 예민할 줄은 몰랐어요.”
“돼지, 생각보다 섬세한 동물이에요. 그냥 먹고 뒹구는 줄 알면 오산이에요. 자기한테 관심이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다 압니다. 기분도 자존심도 있어요.”
“희한하네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느낌이에요.”
“맞아요. 사람보다 더 솔직하죠.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말하거든요. 삐지면 숨지 않고 삐져요. 복실이는 특히 그래요. 하루에 서너 번은 토라졌다가 풀렸다가 해요.”
“그럼 어떻게 풀어요?”
“좋아하는 음악 들려주고, 목 긁어주면 좀 풀려요.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억지로 뭘 하려 하면 더 화내니까요.”
농장주는 복실이에게 다가갔다. 낮은 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복실이는 처음엔 꼼짝 않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금세 철창 안엔 조용한 화해의 분위기가 흘렀다.
“됐네요. 이제 풀렸어요. 삐진 거 다 풀었어요.”
방문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기하네요. 돼지가 삐지고, 풀리고… 감정이 진짜 있네요.”
“그럼요. 그래서 이 녀석들 보면, 자꾸 마음이 갑니다. 정이 들어요.”
복실이는 어느새 콧소리를 내며 농장주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삐짐은 사라지고, 대신 애정 어린 친밀함이 마당 한가운데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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