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무등산에서 살아남기

『사람사이』(수필집),『무등산』,『지리산』,『백두산』,『AI창세기』(몽당소설)

사람사이(수필집)& AI창세기, 백두산,지리산, 무등산(몽당소설 4부작) 판매 중 자세히보기

책방일기

🎶〈바다 건너 울엄마〉 (소설을 노랫말과 노래로 만들다)

두렁 2025. 5. 31. 17:35

 

https://gemini.google.com/share/1cd80bd01823

 

명령어 : 아래 단편소설 울엄마를 노래로 만들어라

 

작사: 사용자
조성: C Major / 박자: 4/4 / 템포: 느리게 (♩ = 72)


1절

css
복사편집
[C] G [Am] 바다 건너 지리산 등줄기
[F] C [G] 세월처럼 등허릴 짊어진 채
[Em] Am [Dm] G 해마다 봄이면 웃음꽃 피우시고
[C] G [C] 가을이면 눈물 감추셨네

후렴 (멜로디 포함 – 첫 줄 예시)

mathematica
복사편집
♪ 멜로디 (절제된 느낌, 한음씩 진행):
E G A | A G | F E D
| G G ♪ 바 다 건 너 우 럴 엄 마 사 랑 해
[C] G [Am] 아무 말도 없던 손끝 기억나
[F] C [G] 주름마다 고인 시간의 노래
[Em] Am [Dm] G 뒤돌아보면 언제나 거기 계시던
[C] G [C] 산처럼 큰 울엄마 생각나

2절 (선택)

css
복사편집
[C] G [Am] 세찬 비에 속옷 젖던 날에도
[F] C [G] 말없이 우산 되어주신 분
[Em] Am [Dm] G 검은치마 소매로 내 눈물 닦으시던
[C] G [C] 지리산 같은 엄마의 품

🎼 작곡 가이드

  • 절 멜로디: 낮은 음역 (E4 ~ G4)에서 시작해, 후렴으로 갈수록 A4 이상의 고음으로 감정을 끌어올리세요.
  • 화성 진행: 단순한 C-Am-F-G의 50~60년대 스타일로 구성하여 국민가요풍의 친숙함을 유지합니다.
  • 반주 스타일: 기타 아르페지오 또는 피아노 왈츠 리듬 추천 (1박에 한 음씩 울리게).

 

단편소설 : 울엄마

 

해가 지고 있다. 십이월의 태양은 고단한 하루를 뒤로하며 빠르게 수평선을 넘고 있다. 바다를 물들인 석양빛도 너무나 짧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삼천포 연륙교의 야간조명 불빛을 뒤로하고 저기 등대 넘어 떠나가는 작은 배가 보인다.

어쩌면 지극히 그저 그런, 흔하디흔한 하나의 배에서 나오는 불빛이 밤물결을 따라 흐른다. 불빛은 마치 힘차고 반복적 심장 박동을 나타내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느리게 파동을 치는 심전도 곡선 같다. 어머니의 가슴에 연결된 링거액, 불빛이 바닷물에 떨어진다. 심전도 기계의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바다라는 모니터 화면의 웨이브 파동은 내 앞에서 점점 느려지고 있다.

육지를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배는 분명 만선의 꿈을 안고 떠가는 것 같지는 않다. 작은 배는 홀로 어둠 속 거센 물결을 헤치며 떠나간다. 수평선 넘어 어디쯤에 이르면, 새로운 날의 해가 떠오르고,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서 연육교의 불빛을 뒤로 하였을까.

부재중 전화 4

발신번호가 모두 같다. 병원이다. 어머니가 찾고 있는 것이다. 이미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양 어깨를 뒤로 재치며 깊은 숨을 들여 마셨다. 나는 황급히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어머니의 머리 위 가습기가 보이지 않는다. 링거병과 심전도 기계도 사라지고 없다. 나는 어머니의 양쪽 볼을 손바닥으로 비빈다. 아직 따듯한 체온을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마치 어느 여름날 하루 종일토록 따가운 햇살아래 백계재 콩밭을 매고난 뒤 초저녁부터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다.

한 십 분쯤 전에 돌아가셨어요!”

간호사가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해 주었다.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하얀 침대 시트를 어머니의 머리끝까지 덮는다.

오후에 몇 분이 어머님을 찾아왔었답니다. 그리고 갑자기 힘이 사라져 갔습니다.”

나는 병실 천정을 멍하게 올려다본다. 어머니 앞에선 늘 그 흔하던 눈물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던 게 분명했다.

의지가 강하신 할머니였는데.”

간호사는 병실을 나서면서 중얼거린다. 나는 간호사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어머니는 홀로 캄캄한 밤 세찬 물결을 헤치며 다시 건너올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너 간 것이다. 그 흔한 연육교의 인공불빛도 어머니가 떠나가는 길에는 없었다. 병실의 냄새와 바람이 요단강을 건너가는 어머니와 함께했다.

나는 하늘나리 병실을 나와 시골집과 작은 형에게 전화를 했다.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시골집에 어머니가 타고 갈 앰뷸런스는 오지 않고 자꾸만 할아버지가 요단강을 건너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처럼 소에게 밟혀 다리가 부러지고, 들쥐병에 걸려 병원신세는 지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여든이 되던 해의 봄부터 거동이 불편하여 사립문 밖 출입이 힘들어 하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부터는 어머니와 큰형수가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냈었다. 종종 동네의 이웃 할머니들이 미음을 끓여 와 할아버지에게 먹이기도 했었다.

가을이 거진 끝나 가는 시월 말, 그 날은 새벽부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삼촌들이 아침 일찍부터 큰방 할아버지 앞에 자리를 틀고 있었다. 동네의 몇몇 사람들은 비를 피해서 아래채 지붕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큰방과 마당을 오가며 잔심부름을 하였었다. 비는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집 앞 개울에서는 여름 장마 때 들었던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물 가져와 얼른.”

마루에서 동네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데 방안에서 물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쏜살같이 사발그릇에 물을 담아 방문을 열었다.

무우, 무울이.”

할아버지의 입이 움직이고 있었다.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를 마지막으로 지난 이틀간 할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고모가 헌겁에 물을 적셔 할아버지의 입술을 연신 닦아냈다.

요오다아가앙!”

할아버지는 갑자기 감았던 눈을 크게 뜨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내쉬더니 눈을 감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힘을 내어 다시 찬송가며 성경을 읽어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방을 나왔었다.

아부지, 아부지.”

뜬금없이 방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할아버지가 몸을 들썩이며 숨을 들여 쉬며 요단강도 다시 찾고 있었는데, 방에서 삼촌과 고모들이 왜 울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장대비는 어느새 멈추었고 하늘의 구름은 어디론가 빠르게 달아나고 있었다. 집 앞에 흐르는 개울물 소리는 동네를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임종은 온 가족이 지켰고 동네의 이웃들도 함께 했었다.

 

백미러를 통해 어머니가 오르막을 잘 오르고 있는지 뒤돌아본다. 어머니는 군소리 없이 나의 뒤를 따르고 있다. 조금만 가면 차황이 나오고 밀짐재 고개를 넘어야 한다. 지난봄에 어머니와 함께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은 게 마지막이었다.

이놈아, 네가 고생이 많다. 네게 짐이 되는구나!”

엄마,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살아생전 제 스스로 밥숟가락 못 들 때 물 한 목음 입에 넣어 주는 게 중요하제. 제사, 그 다 필요 없는 기라. 죽으면 다 그만 인기라. 제사는 지내지 않을 깨. 내 엄마 병원비는 벌고 있으니 미안해 할 것 없어요.”

어머니가 난생 처음으로 한 달 넘은 병원신세를 진 다음에 집으로 돌아갈 때 내게 한 말이 똑딱거리는 비상깜박이 소리 틈새로 들려온다. 어머니와 함께한 지나간 시간들이 나의 앞을 자꾸만 가로 막는다.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다리에서 자꾸만 힘이 빠지고 차는 숨을 몰아치며 가까스로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그 때만해도 어머니는 천년만년 나의 곁에서 영원히 살 것 같았다.

그 날은 비가 내려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곡우로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졌었다. 한편 한계령에는 십오 센티미터의 눈이 내렸다 했다. 또한 낮 기온이 이십 도를 웃도는 초여름 같은 날씨도 있었다. 그러다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가 찾아왔었다. 기상청 관계자는 날씨가 너무 오락가락해 정신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상 추위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여름이 돼 가는 과정으로 북쪽의 찬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세력 다툼을 벌이면서 기단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으로 이때 어느 쪽 힘이 더 세냐에 따라 따뜻하기도 하고 춥기도 하다 했다.

사천을 출발해 대진 고속도로를 들어설 때만해도 바람만 불었다. 산청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장대비가 쏟아졌다. 속도를 팔십 킬로미터로 줄였지만 비바람에 차가 휘청거렸다. 차창 밖, 강한 바람 속에 비가 쏟아졌다.

나는 허겁지급 삼층 병실로 달려갔다. 삼백이호 문을 열자마자 어머니의 눈과 마주쳤다.

이놈아, 왜 이제 오냐.”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참아오던 눈물을 왈칵 쏟아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가슴에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로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쳐냈다.

왜 울어, 울지마!”

애는 잘 크고 있나, 아푸지 않고?”

, 내일 모레 데리고 올게요.”

조퇴를 하고 출발하면서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리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다. 팔순이 넘은 노인의 건강은 봄 날씨처럼 변덕이 심하다고는 했지만 아무튼 나는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 소에게 밟혀 다리 수술을 한지가 스무날이 넘고 있었다.

일반병실은 중환자 병실과 달리 병실의 출입이 자유로웠다. 목이며 소매가 헤어진 푸른 가운을 입지 않아도 병실출입이 가능했다. 삼백이호, 열두 개의 모든 침대 앞에 환자의 이름과 나이, 병명을 기록한 명찰이 붙어있었다. 모두가 여자였다. 간병인도 여자였다. 남자라고는 나 혼자뿐이었다. 조용하던 병실에 갑자기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 울지 마세요. 울면 병이 심해져요!”

간병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 고개를 침대에 푹 숙인 채 울고 있었다. 삼백이호 간병인은 흐느끼며 울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그녀의 눈물은 두루마리 화장지에 싸여 휠체어에 매단 검은 비닐봉지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 스님이세요!”

간병인에게 물었다. 한 달 가까이 병원출입을 했지만 스님이나 비구니를 만나지 못했었다. 나는 퇴근 후 주로 밤에 병원을 찾았기에 볼 수 없었는지도 몰랐다. 어머니를 포함해 다른 노인들은 단발머리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은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과 같았다. 아마도 군청이나 새마을 지도자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다녀간 듯 했다.

거기 모자(母子) 때문에 울어요.”

왜요?”

자식도 없고, 찾아오는 이 없어 외로워서 울고 있어요.”

뜻밖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그 비구니에게로 갔다.

스님, 울지 마세요.”

내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녀의 침대 앞에 붙은 이름과 나이를 보고 다시 놀랐다. 그녀는 예순넷으로 여든둘의 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스님, 건강하세요!”

그녀는 그만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간암과의 투쟁보다는 외로움과의 싸움, 마음이 더 아픈 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병실 창문을 넘어 비바람 속으로 아주 느리게 나갔다. 자식, 외로움, 창 밖 다리건너 수승대 쪽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 곳에도 비바람은 지칠 줄 모르고 내리치고 있었다.

아마 그녀도 수행자로서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수 없이 되뇌었을 것이었다. 미래에 대한 세속적인 준비를 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노후에 대한 지나친 근심과 걱정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된 지혜를 놓치게 하며, 온갖 욕심과 집착, 소유와 이기에 물들게 하는 가장 큰 주범이 되고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시시때때로 상기하였을까. 먹고 사는 일이라는 것은, 노후의 문제나 미래의 문제는, 그 사람의 복 지은 바에 따라, 그 사람의 행위, 즉 업에 따라 저절로 꽃피어 나는 것이라 그녀도 믿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생로병사는 다른 보통 사람들과 같이 오고야 만 것이었다. 어쩌면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에 한 번쯤 그녀도 동의했을까. 그녀는 언제 어떤 연유로 비구니가.

 

그만 그 빠른 세월이 참 더디게 가기 시작하고 말았다. 나날의 시간은 마치 멈춰선 것 같았다. 그러나 세월만큼은 마냥 제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미음이 아닌 밥을 먹기 시작한 지가 일주일째가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병원 밖을 나와 논들 가운데 난 큰길을 따라 바람도 씌었다. 읍내의 한식당에서 누룽지와 명탯국 그릇을 뚝딱 비웠다. 담당의사는 곧 퇴원을 해도 될 것 같다 했다.

엄마, 이제 집에 가도 된다고 의사선생이 말했어. 오는 주일에 집에 가자.”

그래 오늘 당장 집에 가자. 병원에 온지 얼마 됐나?”

어머니의 다음 말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또록또록하게 말했다.

, 돈은 얼마 들었노!”

엄마, 돈은 무슨나라, 정부에서 노인들에게 다 공짜로 병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데.”

이놈아 거짓말도 잘한다. 나라에서 언제부터 그라노! 얼렁 집에 가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들판은 온통 봄의 향연으로 분주했다.

수캐는 잘 크나?”

, 어제 저녁에 손자 봤잖아.”

어머니는 정신이 들면서 당신보다 둘째와 돈 걱정이 먼저였다.

내 얼른 죽고 싶다! 죽는 것도 맘대로.”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나는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굴러가던 휠체어바퀴가 멈추었다.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를 도와주는 것은 일한다고 밭에 가지 않고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라 했잖아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내가 화를 내자 어머니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병원으로 휠체어 방향을 틀었다.

평생을 살아온 시골집에 가고 싶은 게 당연하겠지만, 어머니는 무엇보다 막내아들인 내게 짐이 된다는 사실에 낮 시간 내내 간병인과 간호사에게 집에 가겠다고 졸랐던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현대의학의 덕분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고래심줄 같은 삶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뭉치의 약봉지와 함께 아파트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어머니는 혼자서 걷겠다며 나의 부축을 뿌리쳤었다. 며칠이나 아파트 생활을 별 탈 없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고혈압과 신장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집에 와서 며칠 동안은 하루 세끼 밥을 잘도 먹었다. 감자부침개며 명탯국을 좋아했다. 아침저녁으로 어머니는 혼자 베란다로 걸어가 창밖의 논이며 밭을 멍하니 바라보곤 하였다. 그런 어느 날 아침이었다.

엄마, 할머니가 없어!”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눈을 비비며 소리쳤다. 곧이어 아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누가 문 열었나!”

아내가 아파트의 현관문부터 확인했다.

동생 잘 보고 있어라.”

나와 아내는 황급히 아파트 계단을 따라 일층으로 내려갔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백삼동쪽으로 가고 나는 학교 가는 큰 길을 따라 갈게.”

아내는 이미 얼굴이 파래져 있었다.

나와 아내는 각자의 핸드폰을 들고 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 출근하는 차들이 빵빵 거렸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난데. 거리를 더 넓혀서 찾아보자고.”

학교 지나서 큰길까지 가 봐!”

아니, 당신은 집에 가서 화장실과 베란다를 다시 찾아보고, 애들만 집에 둘 수 없잖아.”

알았어요!”

나는 아파트로 다시 돌아와 차를 몰고 큰길을 향해 시내 쪽으로 달려갔다. 멀리 눈에 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뒤뚱거리며 어눌하게, 종종걸음으로 걷는 모습으로 보아서 틀림없이 어머니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 어디가! 어떻게 문 열었어?”

이놈아, 집에 간다.”

내일 집에 모셔다 드린다고 했잖아. 집에 가서 뭘 하려고. 모내기가 끝난 지도 언젠데. 집에 가도 할 일 없어. , 차에 타세요. 내일 집에 갑시다.”

맨날 거짓말만 하고, 내일 회사는 안가?”

그래, 두 밤만 자고나면 토요일이다. 토요일에 집에 가자.”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타난 어머니를 본 아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엄니, 아침부터 어디 갔다 왔어.”

어머니는 언젠가 아내와 함께 간 시장가는 길을 따라 시골집에 간다며 아침 일찍 몰래 집을 나선 것이었다. 어머니로서는 필사의 노력 끝에 아파트 감옥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 것이 분명했다.

오늘 퇴근해서 밤에 시골집에 모셔다 드리지 뭐.”

나는 현관을 나서며 아내에게 말했다.

또 넘어져 다치면 어쩌려고. 지난번처럼 일한다고 집 나가 논두렁에서 굴러 떨러지면.”

아내는 출근을 위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나의 뒤통수를 향해 내뱉었다.

 

다시 어머니는 시골집에 가는 대신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했다. 다리의 골절이 아물어 가면서 아파트로 돌아온 지 열흘이 채 못 되어서였다. 요양병원은 콘크리트 삼층 건물로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있었다. 일층은 물리치료실과 주사실이 있었다. 이층의 기저귀를 찬 거동이 불가한 할머니, 삼층은 누군가의 부축 없이도 혼자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노인들로 이미 정원을 초과하고 있었다. 노인요양병동에 입원하기 위해서는 혈연이며 지연이며 학연과 같은 그 무슨 연줄이 하나라도 있어야 대기자 명단에서 오랜 기다림 없이 입원하여 병실에 가 누울 수 있었다. 총무과장인 중학교 후배의 도움으로 그 날 바로 입원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요양원의 입원절차를 마치고 난 뒤에야 작은 형에게 전화를 했다.

, 네 맘대로 요양원에 가. 큰 아들이 있는데!”

농사철에 하루 세끼 밥은 누가 챙겨주고, 기저귀는 누가 갈아줍니까?”

나는 그만 형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아들 셋이 병든 노인을 가운데 두고 다들 못 모시겠다고 싸우는 게 우습지 않아요. 형은 늙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청춘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입으로만 이렇쿵 저렇쿵 하며 병든 노모를 모실 수는 없지요. 먼저 병든 엄마부터 최소한도라도 모신 후 시간을 가지고 만나서 이야기 하죠. 전화상으로 이러니 저러니 하기 보다는 그래도 남도 아니고 엄마 아닌가요. 혼자 사는 노인 목욕봉사는 해도 제 어미 목욕은 못시킨다니 말이 됩니까. 걱정 마시고 언제 한 번 내려오세요.”

아마 형도 어머니가 요양원에 입원을 했다니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었다. 형에게 따발총으로 쏘아 붙이고 나니 나의 가슴 한편의 피멍이 사라지는 듯 했다. 지난 여섯 달 동안 병원과 집을 전전한 어머니를 생각하니 다시 따발총으로 갈겨 주고 싶었다.

어머니는 침대에 눕자마자 눈을 감았다. 내가 형과 전화로 싸우는 것을 듣고도 못 들은 척 눈을 감은 것인지도. 잠시 후 간호사가 어머니의 양팔을 침대의 양쪽 난간에 묶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양 팔을 간호사에게 맡긴 채 천정의 형광등 불빛을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요단강을 건너가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할머니, 어쩔 수 없습니다.”

간호사는 쌍심지를 켜고 있는 나의 눈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역력했다. 침대에서 떨어져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도 체념을 한 듯 했다.

어쩌면 어머니의 삶은 젊은 시절부터 일찌감치 남편에 대한 체념이 있었기에 팔순너머까지 견뎌 낼 수 있었을까. 내가 자라면서 집을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타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작은집 아이들과 싸우지 말고 지내라이!"

심심찮게 들었다. 형들도 작은집 식구들과 이웃사촌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었다. 모두다 어머니가 일찌감치 부터 남편에 대한 체념이 있은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작은집을 차리면서부터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 왔었다. 작은 형이 나보다 열 살 위고, 큰형은 작은형보다 일곱 살이 많다. 그러니 열여덟에 시집을 와서 여든둘까지 청상과부로 산 것이나 다름없었다. 양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이 어머니의 일생을 잘 말해주었다. 열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상처나 아물어 성한 손가락이 없었다. 얼마나 밭에서 일을 했는지 오른쪽 엄지손톱이 시커멓게 서서히 빠지고 있었다.

너를 놓고 부황이 들었었다. 착하게 커설랑 니 어미 잘 모셔야 한데이! 너그 어머니 혼자 이 집을 지었제. 너 놓고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세가래 나무를 어미재에서 머리에 이고 날라 집을 지었다. 못된 너 애비를 닮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면서기 질이라도 해라이.”

옆집 정 집사는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백발의 머리까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말했었다. 그녀는 어머니보다 한 참 나이가 아래였지만 검은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었다. 정 집사의 머리가 왜 백발이었는지 1983년에야 어느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에서는 거창사건이라 했지만 내가 태어난 곳의 신원사건이었다.

정 집사는 열아홉에 홀로되어 아들 하나 지키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다. 박산골에서 군인들이 내지른 청솔가지 불에 타 죽은 삼부자 가운데 그녀의 남편이 끼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었다. 내가 청년이 되기까지 어느 누구도 장로 대통령 이승만의 쫄개였던 미친 군인의 총칼에 동네가 온전히 유린당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었다. 빨치산 토벌대 11사단 최덕신도 알게 되었다. 옥계천 건너 박산모티의 남자묘·여자묘·아이묘, 큰무덤의 비밀과 진실을 찾아 헤매기 시작하면서 면서기라도 해서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그 면서기와는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가고 말았었다. 어머니는 그 모진 세월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것이다.

세월이 좋아졌고 먹을 것도 넘쳐나게 풍족하게 살고 있지만, 나는 정 집사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너 어매 잘 모셔야 한데이!” 그때 그녀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었지만, 어머니는 다시 먼 길을 홀로 재촉하고 말았다.

생로병사,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노인요양병원에서도 하루걸러 일반병원을 오가며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감기 몸살 한 번 없이 살아왔지만 약을 주는 대로 받아먹었고 요양원에서도 탈출을 멈추지 않았다. 늘 호시탐탐 요양원 담장을 넘어 집으로 가기위해 투쟁했다.

어머니께서는 이곳에서 정을 못 붙이고 있어요. 특히 주말에 다녀간 뒤에는 힘들어 하니 자주 오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매일 여기에 올 수도 없으니.”

요양원의 사무장은 말끝을 흐렸다.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 매일 만나면 좀.”

그날 바로 나는 아침저녁으로 들릴 수 있는 일반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요양원 사무장의 도움으로 육층 노인병동의 병실을 얻을 수 있었다.

육층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간호사실이 나타나고 좌측에 복도를 마주한 네 개의 병실이 있고, 우측에는 사워실과 세 개의 병실이 있었다. 목화병실은 사워실의 바로 앞에 치매가 심한 할머니들의 방과 마주하였다. 간호사실 좌측 옆의 하늘나리 병실은 중환자실로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가 대부분으로 심전도 기계음 소리가 가득한 방이었다.

처음 입원한 환자는 대개 간호사실 좌측 끝의 진달래병실에서 가족과의 이별연습을 했다. 진달래병실의 환자는 하루 한 번쯤은 복도를 걷기도 했다. 시간이 가면서 목화병실을 거처가기도 하지만 간호사실 바로 옆 하늘나리 병실로 옮겨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간호사실 옆 병실로 옮겨가면 이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였다. 간호사실 옆의 병실, 그 다음은 퇴원으로 가족의 품으로 대개는 일단 돌아갔다. 퇴원한 할머니가 다시 입원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마도 집으로 돌아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생을 마감한 것 같았다.

어머니도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는 간호사실과 제일 먼 방에서 시작했다. 간병인과 간호사의 이십사 시간 간병에 힘입어 걸어서 병원을 퇴원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열에 아홉이 간호사실과 점점 가까운 병실로 이동하듯이 어머니도 급기야 목화병실을 오가기 시작했다. 목화병실의 방바닥에는 언제나 똥칠이었다.

이놈아 집에 가자. 여기가 어디고?”

엄마, 여기가 집인데 가길 어딜 간다고.”

모는 다 심었나?”

. 나락이 잘 여물었어요. 오늘 엄마가 비료를 많이 주었데. 일 그만 하고 쉬세요.”

경운기 가지고 와라. 경운기 타고 논에 갈란다.”

오늘은 하루 종일 들에서 일해 놓고. 지금은 밤이라 못가요. 내일 아침에 갑시다.”

너거 형은 들에서 안왔제. 어디갔노? 얼굴 본지가 오래다.”

오고 있어요. 곧 올 겁니다.”

날이 밝은데 일하로 가자.”

지금은 밤이라 못가요.”

이렇게 밝은데 밤이라고 거짓말을 하나. 썩을 년들이 나를 들에 못 가게 잡아놓고 있다. 네가 잘 말해봐라.”

내가 잘 말해볼게. 그런데 지금은 밤이라서 못가요. 간호사 처녀들이게 욕하면 어떻게 해. 다음부터는 욕하지 말아요.”

한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어머니를 바라보다 끼어들었다.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에 가는 중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노인병동에 입원한 유일한 남자였다.

하루 종일 막내아들만 찾아요.”

할아버지는 낮에 일어난 일을 내게 말했다.

엄마, 내일 아침 일찍 와서 집에 가자. 잠 잘 자고 내일 만납시다.”

내 되리고 가라!”

간병인이 방 청소를 한다고 하였지만 지독한 냄새가 났다. 나는 어머니를 병실에 눕히고 문을 잠근 뒤 병원을 나섰다.

처음 한 달가량은 어머니를 병실에 두고 집으로 향할 때면 눈물이 자꾸만 흘러 눈앞이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나도 간병인과 간호사같이 점차 어머니가 아닌 환자로 내 앞에 누워있었다.

노인 병동에는 왜 할머니가 대부분인가요?”

한 날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한 참을 생각하더니 무표정하게 말했다.

여자의 일생이 그렇지요.”

나는 간호사의 말을 단박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간호사는 나를 휭하니 보더니만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할머니가 계시는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혼자 죽지는 않아요."

우문현답, 그제야 왜 여자의 일생이란 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간호사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자식 낳아 키우고, 늙어 일 못 할 때쯤에는 집나가 공부하는 손자며 손녀 밥 해주고, 남편 병수발까지 마저 하고나면 저렇게 병들어 병원에 오지요. 여기 할머니 상당수가 그 잘나가는 자식들이 있지만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가족이 드물어요. 아니, 여기 입원한 할머니는 그래도 형편이 좋은 편이랍니다. 자식들이 병원비라도 보내주니 병원에서 하루 세끼 밥은 챙겨 주고 있지요. 병원에 못 오는 할머니도 많아요. 차라리 가족이 없으면 나라에서 돌보니, 무자식이 상팔자인 할머니가 많아요.”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뒷머리가 묵직했다. 간호사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있으나 마나한 자식이 되레 병든 노인에게 짐이 된다는 간호사의 말이 나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다시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바람은 한결 따뜻했다.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았는데 길옆에서는 제비꽃이 피고 있었다. 산비탈 양지바른 곳에서는 벌써 진달래가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계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속력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목련꽃이 더없이 새하얗게 핀 봄이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한 침대에서 자는 날이 많았다. 마흔 여덟의 그녀는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셨다. 그녀의 남편은 오년 전에 오랜 병마와 싸우다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외동아들이 군에 가서 첫 휴가를 다음 주에 나온다고 했다. 그녀는 시영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간병인은 어머니를 자신의 어린 아이마냥 양팔로 감싸 안은 채 잠을 잤던 것이다.

어머니가 많이 외로우신 것 같아요. 아들 자랑도 많이 하고, 사돈집에 오래 있으면서 목욕탕에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고 자랑을 어찌나 하든지.”

고맙습니다. 한 침대에서 자는 게 많이 불편하실 텐데.”

이놈아 왔나!”

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잠을 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어머니가 나의 손을 잡아챘다. 어머니의 손은 어제와는 달리 따뜻했다.

, 좀 어때요?”

집에 갈란다. 지금 집에 가자!”

엄마, 이제 좀 살만한가 보네. 지금은 밤이라서 못가. 내일 아침에 시골집에 갑시다.”

엄마가 보고 싶다!”

, 엄마?”

나는 어머니가 말하는 엄마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 엄마가 흰 옷을 입고 왔었다. 엄마 집에 가자.”

할머니, 조금 전에 잠꼬대 하시더니 친정어머니를 만나셨나 봐요?”

간병인 아주머니가 어머니의 말을 가로챘을 때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외할머니!’

어머니가 말하는 엄마를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찾고 있는 외할머니를 본 기억이 없다. 처음으로 어머니가 당신의 어머니를 찾은 것이었다.

, 갑시다. 외가에 들렀다가 집에 갑시다.”

나의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어머니는 그 먼 옛날 당신의 어머니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언젠가 어머니는 외가가 부산으로 이사를 간지가 수 십 년은 되었다고 했었다. 어머니가 태어난 산청 오부마을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곳에 가고 싶다니 외할머니의 무덤에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죽은 자와 작별을 고했던 것인가. 살아있는 자식, 가족과의 만남과 대화는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었을까. 정말 미안하다.

봄은 짧았고 무더운 여름은 너무나 길었다. 어머니에게도 더 없이 기나긴 여름이었다. 그 여름이 힘을 잃어 가며 찬바람이 불 때쯤 어머니의 정신은 더욱 오락가락 했다.

내 버리지 마라! 어디 갔다가 이제 오냐.”

아침에 병원에 들렀을 때는 왜 왔느냐며 빨리 출근하라고 말했지만, 저녁에 병실문을 들어서자마자 나를 나무랐었다. 어떤 날은 혼자 걷겠다며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용을 썼지만 한 발자국도 스스로 걷지를 못했다.

세월은 멈추지 않아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끝에 들어서면서 어머니는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을 억지로 먹었다. 점심은 그 잘난 아들이 오면 먹는다며 간병인이 주는 밥숟갈을 보고 입을 닫아 가기 시작하고 말았다. 내가 병원에 들을 때마다 간호사는 어머니의 상태며 호흡 보조기의 연결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심전도의 기계음이 방을 울리는 듯 크게 들렸다. 링거액만이 힘차고 반복적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가락이 느리게 꿈틀거렸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모니터 화면의 파랑 빨강 녹색의 선이 파동 치며 움직이는 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소생술을 하시겠어요?”

?”

간호사가 하는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심폐소생술(CPR) 아시죠? 멎어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독한 약들을 투여하고 전기로 충격을 주어가며 가족이 올 때까지 심장이 멈추지 않게 하는 것으로 환자에게는 고통이지요.”

나는 그제야 간호사의 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십분 안에 올 수 있는데.”

대신 할머니가 고통스럽습니다!”

아니, 이번 주에 들어서 상태가 좋아지고 있잖아요!”

나의 불퉁한 말에 간호사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여기 계시는 할머니들 대부분 한 달을 더 사실지, 아니면 오늘 밤에 가실지는 누구도 모른답니다.”

산 사람 좋아하자고 마지막 가는 할머니에게 억지로 십 분, 이십 분 정도의 생명연장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나는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다. 정작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들로, 병원을 들락거리며 공부를 했어야 했지만 무식했다.

어떻게 하나요?”

“DNR이라 하셨나요?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겠습니다. 가족을 대표해서 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하겠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간호사도 더 이상 내게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좋아라고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간호사가 내미는 DNR 동의서에 나는 사인을 하였던 것이다. 그 때만해도 어머니가 곧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날 아침에도 두 아들을 찾았었기 때문이었다.

 

병원을 출발하여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잠을 자며 꿈을 꾸는 듯하다. 운전석 옆의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확 밀려든다. 어느새 새날의 동이 트고 있다. 어머니가 탄 앰뷸런스는 앞장선 나를 따라 숨 가쁘게 소룡재 고갯길을 오르고 있다. 고개를 넘어서자 저 멀리 산 아래 어머니가 살아온 집이 희미하게 보인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동네 어른들이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는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손길에 말없이 따른다. 그제야 어머니는 방에 들어가 아주 깊은 잠을 자기 시작한다.

어머니도 할아버지와 같이 요단강 건너 저편 언덕에 편안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둘째아들을 보고 잡고 있던 삶의 끈을 놓은 것인가. 아니면 목사의 마지막 기도를 기다렸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쉽게 갈 길을 가지 못하고 그리워하였다.’

이생의 고단한 삶을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 나는 방문을 닫으며 혼자 중얼거린다.

어머니는 이틀을 집에서 쉰 다음 삼일 째 아침 일찍 마당을 나선다. 동네 사람들이 새벽부터 어머니가 마당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편에서 송아지가 계속 울고 있다. 어머니의 다리를 밟았던 어미 소는 외양간 담 너머 목을 내놓고 마당 가운데 놓인 꽃상여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아버지의 꽃상여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없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보다 이십여 년 먼저 요단강을 건너갔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너무나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다. 할아버지는 오일장으로 장례를 치렀었다. 온 동네가 축제였다. 지금이야 오십여 가구가 동네를 이루어 살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인근에서 가장 큰 동네로 백여 호에 육백여 명이 넘게 살았었다.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꽃상여를 타고 동네를 돌아 길을 재촉했지만 점심때를 훌쩍 넘겨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곁으로 갔었다. 상여꾼의 노래는 앞산에서 메아리로 다시 돌아와 동네를 울렸고, 꽃상여를 따르는 사람들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전에 즐겨 부르던 "만세반석 열리니내가 들어가니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목사의 기도와 노래 속에 요단강을 건너갔었다.

어머니도 할아버지와 같이 꽃상여에 올라타자마자 목사의 기도가 어머니를 요단강으로 이끈다.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마당건너 개울을 지나 산기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상여꾼들이 마당입구 골목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줄지어 서 있다. 어머니의 바로 앞에 식도암으로 이십오일짜리 사형선고를 받은 어머니의 네 살 아래 시동생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백발의 머리카락을 날리며 울고 있다. 그의 축 처진 어깨가 눈물을 훔칠 때마다 들썩인다. 그는 병원에서 몰래 택시를 타고 형수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기위해 나타난 것이다. 목사의 짧은 기도가 끝나자마자 어머니는 벙어리 상여군의 힘을 빌어서 단숨에 지아비 곁으로 갔다. 상여꾼들이 마을로 돌아 간지 오래다.

참 멀고 먼 길, 어머니는 마당을 나선지 두 시간이 채 못 되어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있다. 증조할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머니 옆에는 살아생전 그토록 애물단지였던, 손바닥만 한 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멀리 아래로는 평생을 살아온 동네가 내려다보인다. 예전 같으면 하루 세 번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온 동네를 감싸고돌며 사람 사는 온기가 느껴질 것이지만,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늘의 태양만이 서쪽 저 멀리 지리산을 넘고 있을 뿐이다. 바람이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다섯 살인 둘째가 집에 가자고 조른다.

아빠, 할머니가 없다. 집에 얼릉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