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해력에서 문해력으로 ― 지역 정치 현장을 비추며
정치는 읽기의 문제다. 그러나 단순히 ‘읽는 힘’에 그치면 독해력이고, 그 읽음을 현실 속에서 풀어낼 때 비로소 문해력이다. 이 차이는 지역 정치의 현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경상도의 보수 집회에 서 보면, 연단 위 연설은 산업화와 안보의 기억을 소환한다. 말 한마디가 과거 번영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박수와 함성은 그 기억을 확인하는 의식과도 같다. 그러나 연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말이 오늘의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내 삶에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를 묻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문해력이다.
전라도의 정치 현장은 다르지만 비슷하다. 민주화의 상처와 차별의 경험은 특정 정당과 인물에 대한 강한 지지를 낳았다. 유세장에서 외치는 구호와 상징은 단순한 문장을 넘어 공동체의 자존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구호를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정책의 실행 가능성과 연결 짓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문해력이 부족하면 지지는 곧 ‘정체성 확인’에 머무른다.
결국 독해력은 발언을 ‘이해하는 힘’이고, 문해력은 그것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비판하고 적용하는 힘’이다. 경상도의 보수적 독해와 전라도의 진보적 독해가 서로를 향해 닫혀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글자만 읽는 사회에 머무른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경험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공통의 미래를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문해력 있는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정치는 읽기에서 시작되지만, 살아내기로 완성된다. 이제는 독해력을 넘어 문해력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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