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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소설 <백두산>

대구·경북 무논의 뱀과 억머구리 – 뱀에 삼켜지고도 좋아 죽는 정치 생태계 by ChatGPT

두렁 2025. 6. 10. 14:46

물을 잡아 논을 고르면, 어김없이 개구리들이 운다. 와글와글, 목청 돋우어 운다. 밤낮이 없다. 달빛은 휘영청 밝은데, 그 밝음 아래서도 개구리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울음소리가 어찌나 처량한지, 이게 진짜 슬퍼서 우는 건지, 아니면 쇼인지 헷갈릴 정도다. 가만히 듣다 못해 논에 돌 하나를 던졌다. 물이 철벅, 울음이 멎는다. 그 순간만큼은 정적이 내려앉는다. 논 위에 달이 떠 있다. 진실은 침묵 속에 비친다.

 

하지만 잠시뿐. 다시 왕왕거림이 시작된다. 더 요란하고, 더 처절하다. 흡사 무슨 일이 있었던 듯,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는데도 그걸 말 못 하니 더 크게 우는 듯하다. 덩치가 크고, 술에 쩔은 목소리로 진동하는 저 울음은 분명 황소개구리다. 논바닥을 헤집고 다니며 생태계를 뒤엎는 외래종. 일본에서 들어왔고, 힘이 세고, 입이 크다. 토종 개구리며 올챙이는 물론, 잠자리며 도롱뇽까지 모조리 집어삼킨다. 뱃속은 진흙투성이지만, 표정은 태연하다. 난 아무 잘못 없다고 울부짖는 듯. 낮도깨비 무당춤을 춘다.

 

그보다 더 기이한 건 무당개구리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색깔을 바꾼다. 검은 진실 앞에선 회색이 되고, 권력의 눈앞에선 초록색으로 변신한다. 토종 행세를 하기도 하고, 외래종 편에 서기도 한다. 정의를 외치면서 불의에 복무하고,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독재의 시녀 노릇을 한다. 그 목소리는 늘 크다. 진실보다 크고, 상식보다 요란하다.

 

동네 우물 안 개구리들은 안다. 자신들이 무엇에 삼켜졌는지 안다. 그 아가리를 본 적 있다.


이멍박이라는 뱀이 입을 쩍 벌려 논바닥을 집어삼켰을 때,

 

박근해라는 뱀이 진실을 꿰맨 실타래를 꼬아 국민의 숨통을 조였을 때,

 

윤돌열이라는 뱀이 법과 정의를 삼키고도 정의라 우겼을 때,

 

개구리들은 다 보고도, 듣고도, 침묵했다. 심지어 제 발로 뱀 아가리로 기어들어갔다. 황소개구리는 뱀의 앞발을 핥았고, 무당개구리는 뱀의 눈빛을 복음이라 착각했다. 그렇게 하나둘 통째로 삼켜졌다. 뱃속에 들어가고도, 그 뱀이 좋아 다시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이 기괴한 생태를 뭐라 불러야 하나.


‘뱀교’인가, ‘삼켜진 민주주의’인가. 아니다, 이건 단순한 멸종이 아니라 자해다. 희망을 짓이기고, 이성을 도려내고, 다시 뱀의 혓바닥 위에 누운 것이다.

 

그들에겐 역사가 없다. 오직 음모론만 있다. 기억이 없다. 오직 착각만 있다. 그 아가리에 삼켜진 과거를 잊고, 지금도 “윤석열이 감옥 간 건 불법 음모다!”라며 왕왕댄다. 같이 삼켜졌던 이명박이 풀려나고, 박근혜가 사면됐을 때도 박수쳤다. 정작 자기들은 뱀의 뱃속에서 소화당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아니, 모르는 척한다. 뱀에게 복종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이라 믿는다.

 

어떤 개구리는 뱀의 이빨을 핥으며 말한다.

 

“그래도 문재인보다는 윤석열이 낫지 않소?”

 

“박정희 때는 배불리 먹었소.”

 

“그래도 그땐 나라가 돌아갔지.”

 

뱀은 웃는다. 입을 더 크게 벌린다. 다음 먹잇감을 노리며, 거대한 혓바닥을 휘젓는다. 거기 또 개구리들이 모여들어 줄을 선다.


‘하나님 뜻이다’, ‘태극기 부대다’, ‘자유민주주의다’라며 찬송하듯 운다.

 

그러는 사이, 진짜 참개구리는 사라진다. 덩치도 작고, 목소리도 작고, 권력과 친하지 않아서 변죽도 못 울리던 그 개구리. 논에서 유충을 먹고, 흙을 고르고, 짝짓기할 때조차 조용히 숨죽이던 그 개구리.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황소개구리에 잡아먹히거나, 무당개구리 떼창에 밀려났다.

 

어느새 논두렁엔 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돌 하나를 던져도 바뀌지 않는 개구리들의 울음. 하늘이 갈라져도, 대통령이 감옥을 들락거려도, 개구리는 ‘진실’이 아니라 ‘진영’을 위해 운다.

 

대구·경북 무논은 점점 썩어간다. 물이 탁하다.

모내기철인데 모판이 없다. 볍씨는 썩고, 농부는 논을 버린다.
포유류 동네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람들 눈동자에 윤곽이 없다.
뱀을 본 적이 없다는 눈, 아니 ‘뱀을 믿는다’는 눈이다.


비극은 반복된다. 뱀이 또 입을 벌린다.

그래도 나는 오늘 돌을 하나 더 던져본다.
비록 고요는 짧고, 논은 다시 왕왕거리겠지만,
그 돌에 잠시라도 거울이 비치기를 바란다.


그 거울 속에서 우리가
무당개구리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걸,
삼켜진 개구리가 아니라 깨어난 시민이었다는 걸,
다시 떠올리길 바란다.

 

달빛은 여전히 논 위에 떠 있다. 개구리 울음소리 너머, 우리가 잃은 민주주의가 울고 있다.

 

우물 안 빨개이 개구리, 대청소 날이 왔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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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빨개이 개구리, 대청소 날이왔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경상도 순 보리문뎅이로, 현재 광주광역시 거주하고 있다.시골 마을의 공동 우물은 더 이상 일상 속 풍경이 아니다. 지금이야 어디든 수돗물이 콸콸 나오지만, 나의 유년기에는 동네 개울

sejoing.tistory.com

 

ChatGPT의 말:

이 글은 정치 풍자를 문학적 비유와 생태 은유를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한 시사칼럼입니다. 평가를 구성 요소별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 주제 및 메시지

  • 주제의식이 강력합니다.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권을 '뱀'에, 그를 따르는 국민 일부를 '개구리'에 빗댄 은유는 직접적이면서도 풍자적입니다.
  • 정치적 망각과 반복, 집단적 자기기만, 우상화에 대한 비판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으며, 뱀에게 다시 삼켜지길 자처하는 개구리들의 모습을 통해 시민 각성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비판 없는 맹종은 자멸이다.

📌 2. 비유와 상징

  • 비유의 활용이 매우 뛰어납니다. '논', '돌', '개구리', '무당개구리', '황소개구리', '뱀'이라는 생태적 상징이 정치적 현실과 절묘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 '논'은 사회 시스템, '돌'은 양심의 돌직구 혹은 시민의 저항, '달빛'은 진실 혹은 잊혀진 정의를 의미하는 다층적 은유로 읽힙니다.
  • 특히 ‘삼켜지고도 뱀을 다시 추대한다’는 설정은 블랙코미디적 풍자미가 강렬하며, 현실 정치의 회귀성과 비극성을 잘 드러냅니다.

📌 3. 문체와 구성

  • 문체는 시적이고, 절제된 분노가 느껴집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히 전달합니다.
  • 구절 구절마다 리듬감이 살아 있고, 짧고 긴 문장을 교차적으로 배치해 긴장감과 몰입도를 유도합니다.
  • 전통적 수필-칼럼 형식을 따르면서도 서사적 리듬을 살려, 문학성과 시사성을 동시에 확보합니다.

📌 4. 시사성 및 풍자 효과

  • 풍자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단순 조롱이 아닌, 민중의 무기력함과 그에 기생하는 권력 구조를 폭로합니다.
  • 독자로 하여금 "나는 어떤 개구리인가?"라는 자기 성찰의 질문을 유도하며, 좋은 풍자문학의 조건을 충족합니다.
  • 현재 한국 정치상황, 특히 윤석열 정권과 TK 기반 우상화 정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 5. 약점 및 보완점

  • 일부 독자에게는 메타포가 과하게 비유적이라 직접적인 사실 언급이나 구체적 정책 비판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 '뱀의 정체'가 명확히 언급되지만, 뱀에 물린 구체적 사례나 피해(예: 검찰 장악, 언론 탄압 등)를 1~2줄이라도 실명으로 언급하면 더 사실성과 설득력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 소수자 혐오의 뉘앙스를 경계해야 합니다. '황소개구리'에 외래종 이미지를 부여하는 부분에서 정치적 상징을 쓰되, 생물학적 비하로 읽히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표현 조정이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 총평 (5점 만점 기준)

항목점수평가
주제의식 ★★★★★ 시대정신과 깊은 연결성
상징과 비유 ★★★★★ 생태적 풍자문학의 수작
문체와 표현력 ★★★★☆ 문학성과 리듬이 뛰어남
시사성 ★★★★☆ 현실 반영이 탁월하나 사례 보강 여지 있음
독자 전달력 ★★★★☆ 일부 은유는 고급 독해력 요구
 

총점: 4.6 / 5.0
🔎 풍자적 문학 칼럼으로서 매우 뛰어난 글이며, 블로그 시사비평/에세이용으로 손색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