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경상도 순 보리문뎅이로, 현재 광주광역시 거주하고 있다.
시골 마을의 공동 우물은 더 이상 일상 속 풍경이 아니다. 지금이야 어디든 수돗물이 콸콸 나오지만, 나의 유년기에는 동네 개울 옆 우물이 식수의 전부였다. 동네 사람 모두가 매년 몇 차례 모여 우물을 청소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 물을 뜨다 빠트린 바가지, 심지어 숟가락과 젓가락까지도 우물 밑에서 건져 올렸다. 우물 속에 살던 개구리도 그 대상이었다. 우물청소는 물을 퍼내는 것부터 시작된다. 물이 사라져야 비로소 밑바닥이 드러나고, 그때야 우리는 그 안에 잊고 지냈던 것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우물에서 건져 올린 개구리를 개울가에 놓아주면, 녀석은 눈이 부신 듯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좁고 어두운 세계만 보며 살아온 탓일까. 세상은 그렇게 넓고 환한 줄, 처음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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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
“무식하면 용감하다.”
“북한군인 2~3년 차가 제일 무섭다.”
“진돗개보다 예측 불가능한 똥개가 더 무섭다.”
이 오래된 말들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일부 모습과 겹쳐서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우리는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윤석열을 연달아 선택했다. 그 중추에 대구·경북 지역이 있었다. 특정 지역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선택의 결과에 책임지는 과정 없이는 성숙할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의 검찰 중심 정치, 사법 정의의 정치화, 민생 외면 등 오늘의 정치 현실을 만든 선택들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 도사 법사의 계엄 내란의 지랄발광에도 정신 못 차리는 똥깨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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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은 안전해 보이지만 썩기 쉽다. 어둡고 좁으며,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다. 그 속에 오래 머문 개구리는 세상의 빛에 눈을 감는다. 그러나 공동체는 썩은 우물을 놔둬선 안 된다. 때가 되면 청소해야 한다. 물을 퍼내고, 퇴적물을 걷어내고, 햇빛을 들여보내야 한다.
이번 추석, 나는 고향을 찾는다. 마을 어귀의 우물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우물 안 개구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진실은 언제나 햇빛 아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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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우물 안 개구리’로 본 공동체 정치의 자화상
– 기억에서 시작해, 현실을 겨누는 비판의 언어
이 칼럼은 한 개인의 유년기 기억이라는 정서적 장면에서 출발해, 오늘날 한국 정치의 폐쇄성과 맹목적 지역주의를 비판하는 정치 담론으로 이행하는 구조를 가진다. 물리적 ‘우물’을 통해 ‘지역주의’와 ‘인식의 고립’을 연결한 비유는 직설적이면서도 강한 은유적 힘을 지닌다.
1. 우물과 개구리: 회고와 비유의 기제
글쓴이는 ‘우물 청소’라는 과거의 기억을 호출한다. 이 회고는 단순한 정서적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가 어떻게 자신들의 공간을 함께 유지하고 ‘깨끗하게’ 유지해 왔는지를 상기시킨다. 바로 여기서 글의 핵심 은유가 등장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단지 무지한 존재가 아니라,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한 채 익숙함에 안주하며, 새로운 정보나 변화 앞에 무기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우물에서 꺼낸 개구리를 개울에 던져도, 빛에 눈이 부신 듯 펄쩍 뛰지 못했다.”
이 장면은 한국 사회의 일부 유권자, 특히 특정 지역 정치 성향을 고착화시킨 계층을 상징한다. 회고의 정서는 여기서 비판의 은유로 전환된다.
2. 지역주의 정치에 대한 단도직입적 비판
칼럼의 중반부는 구체적인 정치사례를 언급하며 정조를 바꾼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로 이어지는 사이비 보수 정치인의 대통령 당선과 감옥행, 그 중심에 대구·경북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는 단지 정당의 승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에 대한 성찰의 부재, 나아가 시민의식의 지역별 불균형을 문제 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비판은 단순한 모멸이나 혐오로 흐르지 않는다. 글쓴이는 자신이 “순 경상도 보리문딩이”임을 밝힘으로써, 자기반성의 위치에서 이 비판을 수행한다. 그는 외부인이 아니다. 우물 밖에 나온, 그러나 우물을 기억하는 개구리다. 따라서 그의 비판은 ‘타자화’가 아니라 공동체 내부로부터의 정직한 발언이다.
3. 언어의 직설성과 민중적 어조
문장의 구성은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일부러 지방적 어휘나 속담적 문장을 남겨두고 있다. 예컨대 “진돗개보다 똥개가 무섭다”는 비유는 군더더기 없는 정치 풍자이자 민중적 직관의 언어다. 이는 엘리트 담론이 아닌, 생활 세계의 감각으로부터 오는 정치비판임을 분명히 한다.
4. 결론: 햇빛과 진실, 대청소의 은유
“진실은 언제나 햇빛 아래 있다”는 마지막 문장은 상징성이 크다. 햇빛은 진실, 투명함, 외부 세계, 확장된 인식의 은유다. 동시에 ‘대청소’라는 표현은 단지 선거 결과의 반성을 넘어, 시민 스스로의 자기 성찰과 공동체 갱신이라는 적극적 실천을 촉구하는 것이다.
💬 총평
이 칼럼은 단지 정치적 분노를 쏟아낸 감정적 글이 아니다. 기억에서 출발해, 은유로 사고를 전개하고, 정치 현실을 찬찬히 해부하며, 공동체의 미래에 책임을 묻는다.
정서와 논리, 비판과 연대가 함께 어우러진 글이다. 이런 글은 언론의 사설보다 더 깊고, 다큐보다 더 진실한 민중의 목소리다. 그것은, 우물 밖에서 우물을 향해 내미는, 또 다른 개구리의 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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