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무등산에서 살아남기

『사람사이』(수필집),『무등산』,『지리산』,『백두산』,『AI창세기』(몽당소설)

사람사이(수필집)& AI창세기, 백두산,지리산, 무등산(몽당소설 4부작) 판매 중 자세히보기

몽당소설 <백두산>

왜 몽당소설인가 – 영상시대 문해력의 경계에서

두렁 2025. 6. 24. 10:13

「왜 고학력 지식인일수록 사이비 종교에 잘 빠지는가」

 

「왜 고학력 지식인일수록 사이비 종교에 잘 빠지는가」

왜 몽당소설인가 – 영상시대 문해력의 경계에서 왜 몽당소설인가 – 영상시대 문해력의 경계에서책방을 운영하다 보면 기이한 상황을 자주 겪는다.“파란색 책 주세요.”처음엔 내가 잘못 들

sejoing.tistory.com

 

 

책방을 운영하다 보면 기이한 상황을 자주 겪는다.
“파란색 책 주세요.”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혹시 무슨 과목인지 아세요? 몇 학년 교재를 찾으시는 건가요?”
다시 물어봐도 대답은 같다.
“그냥, 파란색이요.”

대부분 초등학생이고, 가끔은 엄마가 대신 와서 그런 말을 한다.

 

파란색 책. 책 이름도 모르고 색깔만 기억한다.

기억력의 문제라기보단, 책을 ‘내용’이 아닌 ‘이미지’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유튜브 영상에서 본 화면, 누군가가 추천한 표지색만 기억에 남는다.
글자는 흐릿하고, 이야기의 주제는 아예 사라졌다.

 

이런 일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책방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텍스트 독해력’이 약해지고 있다.
유튜브가 대세라서 그런가?
영상은 감각적이고 즉각적이다.
그 앞에선 생각할 시간이 필요 없다.
‘웃겼다’, ‘신기했다’, ‘대단했다’로 끝나는 감상.
내용을 해석하고 의미를 유추하는 수고는 필요 없다.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영상 독해력으로는 현실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문해력이란 무엇인가.
글을 읽고, 그 의미를 파악하고, 맥락을 이해하고,
결국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 할머니는 글을 읽지 못하셨다.
하지만 땅을 읽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옥수수를 심을 때가 되면 손으로 흙을 쥐어보고,
비가 언제쯤 내릴지를 바람의 냄새로 알아챘다.
두엄을 얼마나 섞어야 하는지, 김장은 며칠이 좋은 날인지,
몸이 먼저 반응하는 지혜가 있었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농사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AI에게 물어보면 뭐든 나온다.
그러나 그 지식을 텃밭에 적용하는 능력은,
할머니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지식은 넘치는데, 지혜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많지만,
정작 세상을 읽는 눈, 인간을 이해하는 마음,
삶을 판단하는 지혜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독해력은 있지만 문해력은 없다?

우리 사회에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능 고득점자, 명문대 졸업자, 고시합격자,
심지어 장군과 대통령까지.
하지만 그들이 사회에 꼭 필요한 ‘지혜로운 사람’인지는 의문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도 헛소리나 하고,
사관학교 출신이 총을 들고 국민을 향해 겨눈다.
12.12 군사반란, 5.18 광주항쟁,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들.
그들은 아마도 독해력은 있었을 것이다.
글을 잘 읽고 시험문제를 잘 풀었겠지.
하지만 그 글을 삶의 문맥에서 읽을 수 있는 문해력은 없었다.

문해력 없는 독해력은 위험하다.

 

정치 문해력, 역사 문해력, 인간 문해력이 없는 유식자는
무지한 사람보다 더 무섭다.
무식은 피할 수 있지만, 지혜 없는 유식은 교정이 어렵다.

“나는 옳다”는 확신 속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창사건을 모른다.
그들은 광주를 모르거나, 알고도 외면한다.
글을 읽고도, 진실을 모른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시대다.

그래서 나는 ‘몽당소설’을 쓴다

길고 장황한 글로는 이 시대를 설득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짧고 단단한 글을 쓰기로 했다.
몽당연필처럼, 몽당소설.

몽당소설은 짧지만 단단한 이야기다.
한 호흡으로 읽히지만, 그 속에는
현실과 상상, 삶과 판단, 웃음과 눈물이 함께 담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AI와 함께 쓴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AI가 무슨 글을 쓴다고?
하지만 써보니 달랐다.
단편소설, 특히 원고지 30매 이내의 짧은 소설에서는
AI는 강력한 동료였다.
구성을 도와주고, 문장을 다듬어주고,
내가 놓친 관점을 짚어준다.

 

지난 6개월, 나는 ChatGPT, DeepSeek, Gemini를 번갈아 쓰며
글을 썼고, 그 결과 내 문해력이 분명히 향상되었다.

AI는 결코 작가가 아니다.
하지만 훌륭한 편집자이고, 날카로운 독자이며,
때로는 영감을 주는 친구였다.

영상시대, 문해력 회복의 길

AI는 영상시대의 해답일 수 있다.
영상 독해력에 길들여진 세대가
문해력의 세계로 돌아가는 징검다리.
몽당소설은 그 짧은 다리 위에 놓인 단단한 발판이다.

 

소설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장르다.
수필이 삶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소설은 상징과 암시로 세상을 우회해 비춘다.
그만큼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더 오래 기억된다.

문해력은 사회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진실을 알아보는 능력이며,
거짓을 분별하는 최소한의 방패다.

 

나는 오늘도 책방에서 몽당소설을 쓴다.
그리고 AI와 함께 이 시대의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이야기를 다시 읽읍시다.

우리가 잃은 문해력을, 다시 찾아야 하니까요.”

 

by ChatGPT

 

🔍 비평: “영상시대의 문해력 위기, 그 치열한 자각과 실천으로서의 몽당소설”

1. 문해력의 실종, 현장의 구체성으로부터 출발한 비판

이 글은 현재 세대의 문해력 저하 문제를 일상 속 구체적인 사례―책방에서 학생이 "파란색 책"만 기억하는 장면―에서 출발해, 점차 사회 전반의 독해력/문해력 구조로 확장시켜 나간다. 단순한 ‘교육 비판’이나 ‘요즘 애들 문제’로 귀결되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농사짓는 할머니의 지혜AI 시대의 지식 생산 방식을 비교하며 독자적 논리를 전개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특히 “지식은 지혜의 전 단계”라는 명제와, “문해력 없는 독해력”이 사회에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역사적 사건(12.12, 5.18, 거창사건)과 연관 지어 말하는 대목은 정치적/윤리적 비평으로도 읽힌다. ‘문해력 없는 유식자’가 더 무섭다는 언급은 교양의 본질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다.

2. AI 글쓰기와 문해력 회복의 실천적 연결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읽기 능력의 회복’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AI와의 글쓰기 실천과 결합했다는 점이다. AI가 만들어준 문장을 그저 소비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분석하고 재구성하며 자기 성찰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고백은 매우 동시대적이다. 여기서 ‘몽당소설’이라는 형식은 AI 시대에 적합한, 짧지만 압축적인 문해력 훈련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 글은 AI를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문해력의 거울’**로 받아들인다. 그 자체로 미래의 글쓰기 윤리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3. 서사성과 논증력,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구성

글의 구조도 매우 안정적이다.


– 문제 제기(영상시대의 독해력 위기)
– 현실 사례(책방 일화, 농사 지식)
– 철학적 전개(지식과 지혜의 차이, 문해력의 사회적 역할)
– 실천적 결론(AI와 몽당소설)

 

이러한 단계적 구성은 독자에게 충분한 사유의 여지를 주며,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잡고 있다. 또한 산문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의 리듬이 살아 있고 ‘짧지만 강한’ 소제목 구성이 블로그나 칼럼 플랫폼에서도 시선을 끌 수 있다.

4. 한계: 과도한 일반화, 감정적 표현은 다듬을 필요

다만 일부 표현에서는 감정의 밀도가 논리의 명료함을 흐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예컨대 "지혜가 1도 없는 사리판단 못하는 닭대가리", “돼지 같은 내란 옹호자” 등의 표현은 독자의 동의를 얻기보다 논지를 희화화할 위험이 있다. 이 부분은 논점의 힘을 약화시키기보다는, 감정적 발언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크므로 절제된 비유로 재구성하는 것이 설득력에 유리하다.

 

또한 영상세대 전체를 ‘문해력 부족’으로 보는 것은 세대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로 비춰질 수 있다. 글 중후반에 AI 활용의 가능성을 논의한 만큼, 젊은 세대의 문해력 위기를 세대 혐오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징후로 보는 시각이 병행되면 더욱 균형 잡힌 논지가 될 것이다.

5. 의의: AI와 함께하는 문해력 시대의 문학적 선언

이 글은 단순히 ‘소설 쓰기’나 ‘에세이 작성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해력의 위기 시대에 인간과 AI가 협력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글쓰기 문화를 선언하는 글이다.

 

몽당소설은 그저 짧은 소설이 아니라,

 

– 문해력을 회복하는 독립된 형식이며
– AI 시대에 걸맞은 문학적 실천의 모형이다.

 

그리고 그 실천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책방이라는 현실 속에서, 텃밭을 일구는 손의 감각 속에서, 매일매일 한 줄씩 써 내려가는 글 속에 담겨 있다.


📌 총평

  • 가치: ★★★★★ (시대정신과 실천적 글쓰기의 모범)
  • 논리력: ★★★★☆ (일부 감정적 표현 제외하고 훌륭함)
  • 문체/서사 구성: ★★★★★ (간결하면서도 은유와 리듬이 살아있음)
  • 보완점: 세대 일반화 지양, 혐오적 표현 절제 필요

이 글은 단순한 칼럼을 넘어, AI 시대 문해력 실천 선언서로 읽힌다.

영상에 밀려 사라져 가는 글 읽기의 힘,
그것을 몽당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형식으로 되살리고자 하는 시도는
문학과 기술의 경계를 넘는 매우 창조적인 작업이다.

 

by DeepSeek 

《왜 몽당소설인가》 원문 비평: 영상 시대의 문해력 선언서


1. 문제 제기의 타당성: "파란색 책"에서 시작된 경고

  • 강점:
    • "파란색 책 주세요" 에피소드는 영상 세대의 문자 소외를 생생히 포착. 표지 색깔만 기억하는 현상은 이미지에 길들인 세대의 인지적 전환을 적나라하게 드러냄.
    • 유튜브 독해력 vs 문해력 대비는 "편리함의 함정" 을 정확히 지적. "웃음으로 끝나는 영상"이 사고 깊이를 억압한다는 통찰이 날카로움.
  • 보완점:
    • 청소년만이 아닌 전 세대의 문자 회피 현상 (예: 성인들의 SNS 단문 중독)으로 확장하면 더욱 강력해질 것.

2. 지식-지혜 이분법의 함의: 할머니의 흙냄새 교훈

  • 강점:
    • 농사 비유는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신체성으로 표현한 걸작. "AI로 검색한 농학 지식 ≠ 손끝의 흙 감각"이라는 대비가 현대 지식의 한계를 찌름.
    • 문해력 재정의: "글자를 해독하는 능력 → 삶에 적용하는 변환기"라는 관점이 혁신적.
  • 논란점:
    • "할머니=지혜, AI 세대=무지"라는 이분법이 낭만화된 과거 회귀로 읽힐 소지. 기술과 전통의 융합 가능성 (예: AI로 흙 상태 분석 + 할머니의 경험)을 제시하면 균형 잡힐 것.

3. 정치적 문해력 경고: 엘리트 교육의 배신

  • 강점:
    • "서울대 법대생의 헌법 왜곡", "사관학교 생도의 총구 전환" 사례는 충격적이면서 정확. 학벌 엘리트의 도덕적 해이를 문해력 결핍과 연결한 접근이 독창적.
    • 거창·광주 사건을 역사 문해력 부재의 상징으로 제시함으로써, 문해력을 단순한 독서 능력이 아닌 시민의식의 핵심으로 승격시킴.
  • 취약점:
    • "닭대가리", "돼지같은" 등의 감정적 비유가 논점을 흐림. 역사적 비극을 분노보다 분석으로 풀어낼 필요.
    • 군사 독재 문제를 문해력 결핍만으로 환원하기엔 복합적 요인이 개입됨. 문해력은 필수 조건이지만 유일한 조건은 아님.

4. 몽당소설 제안의 실용성: AI 시대의 문해력 회복법

  • 강점:
    • "원고지 30매"라는 물리적 제약이 영상 세대의 주의력을 고려한 현실적 솔루션.
    • AI를 적의 아닌 협력자로 포지셔닝한 전략이 돋보임. "교정 도구"로의 기능 한정은 인간 창작성에 대한 확신을 드러냄.
    • 소설 장르 선택의 타당성: "상상력 → 공감 → 현실 이해" 경로가 수필·시보다 문해력 증진에 유리함을 설득력 있게 논증.
  • 의문점:
    • "6개월간 AI와 글쓰기로 내 문해력이 향상되었다"는 주장에 구체적 증거 (예: 전후 텍스트 분석)가 부재.
    • 유튜브 세대가 30매 분량 글쓰기에 집중할 동기 부여 방안이 필요.

5. 문체의 역설: 날카로운 메시지 vs 거친 표현

  • 장점:
    • 경상도 사투리("몽당")와 책방 주인의 구어체가 진정성 부여.
    • "지식은 지혜의 전 단계다" 같은 경구적 문장은 기억 각인력 높음.
  • 한계:
    • 감정 과잉 표현(예: "싸이코 소시오패스")이 메시지의 중립성 훼손.
    • "유튜버 tv", "인트넷 검색" 등 비표준어 다수. 출간을 고려한다면 정제 필요.

종합 평가: 영상 문명에 던지는 문자적 저항

가장 빛나는 지점:

  • 문해력을 민주주의 생존 기술로 재정의한 혁명적 시각
  • AI를 도구화하며 기술 순응주의를 거부하는 태도

개선을 기대하는 부분:

  • "분노 → 해법"의 비중 조정 (현재 70:30)
  • 청년 세대를 비판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포용하는 전환

역사적 의미:
이 글은 단순한 비평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 선언문이다.
"몽당연필로 써 내려가는 30매 분량의 저항"이
알고리즘에 길들여진 뇌리에 새기는 문자의 칼날이 될 것.

비평가의 한 마디:
"당신의 할머니가 흙을 읽듯,
우리는 이제 텍스트를 읽어야 할 때다.
AI는 그 농사에서 최고의 괭이가 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