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개울을 건너자 바람이 불고 동네에 호롱불 하나가 깜박깜박 빛났다. 논들 사이로 크고 작은 반들반들한 돌멩이가 여기저기 대자로 누워있는 길이 보였다. 길에 소똥구리가 집을 짓고 살 만한 소똥이 널브러져 있었다. 물컹물컹한 소똥을 밟지 않으려 똥을 피해 길을 더듬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멍멍….”
갑자기 개 짖는 소리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의 낯선 냄새, 기척에 개가 짖는 게 틀림없었다. 동네의 호롱불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듯했다. 소도둑 놈, 혹은 빨치산 산사람이 때 없이 내려왔다며 네발 쇠스랑이 덤벼들 것만 같았다. 빨치산 토벌 군인이 동네 사람을 소 몰 듯 몰아 골짝에 가둬 솔가지 불에 태워 죽였다(거창사건)고 했다. 서로 치고받는 지리한 장마, 장대비를 용켜 피해 도망간 할배는 살았다. 그러나 지은 죄 없다며 군인 말만 믿고 개같이 쫄랑쫄랑 따라간 사람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아랫집 삼부자 제삿날이 한 날로, 정 집사는 시집온 지 1년도 못 돼 열 여듭에 혼자가 되었다고 했다.
동네가 멀어지고 논들 가운데를 들어서자, 처음 보는 큼직한 벽돌집이 나타났다. 그네가 있는 것으로 봐서 학교 같았다. 무엇보다 개도 짖지 않았다. 그러나 개가 언제든지 어둠 속에서 나타나 내게 달려들 것 같았다.
그즈음 동네 가운데 사거리를 내려갈 때마다 길을 막고 멍멍거리며 겁을 주는 똥개가 골치였다. 썩비럭 돌을 열 개 포갠 돌열이 같이 무식한 개 세상의 개판이었다. 처음에는 나보다 덩치가 큰 개가 무서웠다. 그렇다고 늘 길을 두고 무서운 개를 피해 논두렁을 타고 내려갈 수만은 없었다.
“워리 워리, 독구 독구야….”
삶은 감자를 던져주며 꼬셨지만, 그때만 약발이 섰을 뿐 다음날에는 개가 떼로 몰려와 나의 길을 막아섰다. 똥개 버릇 남 못준다는 말이 옳았다. 하지만 늘 고구마를 구워 개에게 갖다 바칠 수도 없었다. 돌을 던지며 쫓아봤지만, 개가 사람보다 더 영리했다. 어떤 날은 할배의 지팡이를 들고 내려갔다. 그런데 지팡이도 늘 들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다 개가 없을 때는 내 나이 또래의 황고환이 사거리를 지키며 삥을 뜯으려 했고, 참고 참다가 하루는 내가 그를 두들겨 패 코피를 내 버렸다. 코피 터진 날 뒤로는 내가 나타나면 그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문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보다 똑똑한 개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겨울에 청상가리 약으로 꿩 잡고, 올무로 토끼 잡는 방법으로 개를 잡고 양심상 자유롭게 사거리를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개 주인집에 가서 미친개를 집에 매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왜 개를 길에 내돌리느냐고 어른에서 따질만한 낯짝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똥개에게 벌벌 싸며 눈치 끝 사거리를 오르내리는 것은 너무나 배가 아팠다. 방법은 오뉴월 개 패듯, 몽둥이찜질밖에 없었다. 방법은 있었다.
겨울 한날 작심하고 무 다섯 개를 소죽 끓이는 아궁이 불에 구워 날이 완전히 어둡기를 기다려 사거리로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개가 사거리에 누워있다 나를 보고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코를 킁킁거리며 나를 검사했다. 처음에는 내 발을 핥더니, 차츰차츰 무릎을 지나 내 고추를 핥아버리려 했다. 무를 들고 만세를 부른 나는 꼼짝없이 개의 압수수색에 달달 떨고 말았다. 손에 들린 뜨거운 무가 속절없이 식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 뜨거운 무를 공중에 던졌다. 돼지가 호간 널빤지 구멍 사이로 떨어지는 똥을 기다렸다가 공중제비로 받아먹듯 개가 덥석 무를 물더니 곧바로 깨갱거렸다. 개는 찐득찐득한 뜨거운 무를 입에 물고 날 살려라 도망쳤고, 나는 남은 무를 들고 집으로 올라왔다. 그날부터 그 개나리도 나를 보면 먼저 피했다. 불에 구운 뜨거운 무는 군고구마와 달리 한입에 덥석 받아 물었다가는 누렁이 나리 맘대로 내뱉을 수 없었고, 키 작은 나에게 다시는 똥개 사또질을 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나는 여전히 골목에서 아이들이 싼 똥을 핥고 왈왈거리며 뻐기는 개가 아니꼽고 더러워서도 싫었다.
개는 나타나지 않았다. 벽돌집 안에서 자고 날 밝은 이른 아침에 길을 찾아가면 될 것 같았다. 등골 땀이 식어가면서 으스스 몸이 떨렸다. 겨울 응달에서 추위에 달달 떨듯, 주먹을 쥐고 두 팔꿈치를 가슴에 바싹 당겨 팔을 움켜쥐었다.
창문은 모두 잠겼지만, 깨진 유리 창문을 통해 쉽게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안은 바깥보다 어두웠다. 낮의 온기가 남아있어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데 허리를 약간 굽히고 왼발 오른발,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어둠보다 무서웠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도 여기저기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소리가 더욱 크게 났다.
‘귀신 소리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숨을 멈춰 소리를 죽이며 눈을 크게 뜨고 소리 나는 곳을 찾았다. 아래턱이 위아래로 떨리며 어금니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두 손으로 턱을 움켜쥐어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다. 한참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생쥐가 머리를 빠끔히 내밀 것 같은 어둠 속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오로지 귀를 세워 어둠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소리를 찾았다. 그런데 송아지 방귀 뀌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시 발을 살포시 앞으로 내딛자 여지없이 소리가 또 났다.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앞으로 굽혀 소리가 나오는 발아래에 귀를 들이댔다. 발밑 마루 아래 사는 능구렁이가 널빤지를 뚫고 올라오는 삐걱거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동네 가운데 있는 제실에서 끝녀와 숨바꼭질할 때 들은 마룻바닥 널빤지 아래서 나는 소리 같았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니 또 다른 처음 보는 산과 물이 나의 앞길을 막았고, 나는 주저앉고 싶었지만, 다시 길을 터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오르막, 짧은 내리막 그리고 잠시 잠깐의 평지 길을 번갈아 홀로 걸었다. 내리막은 뛰었고 오르막길에서는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평지에서는 꽃도 따고 별도 헤아리며 송아지같이 해찰했다. 마치 달이 지면 다시 차오르듯… 겨울 끝 봄에는 두렁에 늘 들꽃이 피었다.
마룻바닥은 따듯했다. 나무 책상과 의자 사이의 바닥에 눕자 낮의 햇살을 받아 남은 온기가 등짝에 전해졌다. 밖의 밤새소리는 집에서도 많이 들었다. 창밖 하늘은 벽돌집 안에 보다 밝았지만, 멀리 하늘이 맞닿는 산이 숯에 그을린 듯했다. 눈꺼풀도 더욱더 무겁게 내려왔다. 눈에 힘을 주고 눈꺼풀을 위로 밀어 올려보지만, 다리에 힘이 스르르 빠졌다. 그때였다.
“일어나. 일어나!”
할배의 목소리가 귀에서 연거푸 울렸다. 나는 일어나려 몸을 일으켰지만, 눈꺼풀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에 힘을 줘 봐도 발이 고래 심줄에 꽁꽁 묶인 돼지가 된 듯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할배는 보이지 않았고… 낯선 사람들이 송곳니가 유난히 큰 살쾡이 같은 혓바닥을 드러내놓고, 설을 며칠 앞둔 날 털이 홀라당 뽑힌 채 집 앞의 개울 동네 빨랫돌에 열십자로 누워 무쇠 칼 세례를 받는 돼지 구경하듯 했다.
‘귀신… 탈출하자!’
나는 뻘떡 일어나려 용을 썼다. 악을 쓰며 몸을 꿈틀거렸다. 그러나 오징어가 숯불에 누워 톡탁톡탁 소리를 내며 오그라들듯 했다. 사지를 비틀어봤지만,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머리가 내리는 지령을 손과 발이 아예 듣지를 않았다.
한참을 몸부림 끝에, 어떻게 겨우 일어났다. 얼마 전 꿈속에서 거지에게 가까스로 도망쳐 살아났을 때와 같았다. 새벽녘에 나를 잡으려 뻗치는 거지 손을 뿌리치고 꿈에서 깨어났었다. 일어나자마자 들어왔던 창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상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순식간에 공터를 가로질러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굶어 죽은 아이들을 묻은 애장터를 헤집고 집을 지은 기가 센 터 같았다.
밤이슬은 내리지 않았지만, 발바닥은 소똥을 밟은 듯했다. 왼발 한쪽 남은 고무신짝도 코가 찢어져 엄지발가락이 고무신 밖으로 비집어 나왔다. 논두렁길보다 조금 더 넓은 길을 걷는데 앞산이 희끄무레하게 나타나 뱀같이 스르르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난생처음 보는 낯선 산과 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떨궈졌다. 하늘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을 것 같이 작았지만, 무지막지하게 큰 산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사방을 둘러보는데 동네 앞산에 걸린 하늘이 저녁노을같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 산 넘어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게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비로소 안심됐다.
날이 밝아오자 호박이나 외가 있을 만한, 턱이 져 비스듬히 누운 논두렁이 눈앞에 나타났다. 좁은 논두렁을 뒤뚱뒤뚱 타다 그만 논물에 빠졌다. 발이 미끄러워 양 무릎을 꿇고 개 같이 논두렁을 기어가 잽싸게 덩굴을 뒤집어 당기자 호밋자루만 한 조선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왔다.
나무를 찍는 무쇠로 만든 조선낫, 혹은 풀을 베는 양철로 만든 왜낫을 든 주인이 나타날 것 같아 논들을 휑하니 둘러보며 알밴 장딴지만 한 외를 한입 물고 까투리 둥지 틀 듯 논두렁 콩잎 속에 앉았다.
✍️ 내용 요약
- 화자는 늦은 밤 낯선 마을을 홀로 지나며, 개 짖는 소리에 불안감을 느낀다.
- 똥개들에게 당한 과거의 경험, 그 개들을 혼내주기 위해 뜨거운 무를 던진 에피소드, 그리고 어린 시절의 갈등과 승리 경험이 교차 편입된다.
- 낯선 벽돌집에 들어가 밤을 보내려다 끔찍한 공포감(가위눌림, 환영)을 경험하고, 겨우 탈출한다.
- 새벽, 낯선 들녘에서 조선오이(외)를 발견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 문학적 특징
1. 감각적 서사와 촉각적 묘사
- “물컹물컹한 소똥”, “찐득찐득한 뜨거운 무”, “발바닥은 소똥을 밟은 듯했다” 등 오감 묘사가 뛰어납니다.
- 밤길의 공포가 청각, 촉각, 시각적으로 실감납니다.
2. 공포와 희화의 교차
- 가위에 눌리는 장면은 극한의 공포를 다루면서도, “오징어가 숯불에 오그라들듯 했다”는 비유는 익살스럽고 인간적입니다.
- 개와의 사투도 공포라기보다 치열한 생존과 유머가 공존합니다.
3. 역사적 기억의 은근한 삽입
- “거창사건” 언급은 민간인의 억울한 죽음과 국가 폭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며,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맞물려 있습니다.
4. 아이 시점의 순수성과 세계 인식
- 세계는 아직 불완전하고 두렵지만, 아이는 나름대로 ‘길을 개척’하고 ‘해결책’을 찾아갑니다.
- 뜨거운 무로 개를 이긴 경험은 적지만, 주체적인 승리의 상징입니다.
📚 비평: “아이의 공포가 세계의 진실을 드러낼 때”
이 글은 단순히 시골 아이가 밤길을 걷다 무서운 경험을 한 회고담이 아닙니다. 이야기는 동네 똥개, 뜨거운 무, 논두렁, 사거리 깡패, 무쇠칼, 개울과 빨랫돌, 거지 꿈과 같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소재들을 통해, 불안한 시대와 아이의 생존기를 보여줍니다.
- 비유적 세계: 개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경계선 너머로 침범해 오는 '위협'의 존재입니다. 그것은 군인이거나, 똥개이거나, 말 안 통하는 어른이거나, 가위눌림 속 귀신일 수 있습니다.
- 삶의 연극성: 개에게 고추를 핥힐 뻔한 상황과 무로 반격하는 장면은 아이의 몸을 중심으로 삶이 연극처럼 펼쳐집니다.
- 저항의 서사: 비록 작고 별 볼 일 없는 '뜨거운 무' 하나지만, 그것은 아이가 세상과 맞서는 무기이며, 이 소설의 핵심 상징입니다.
🌕 총평
이 글은 몽당소설 무등산 스타일의 확장에 있어 매우 탁월한 한 편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농촌과 동네, 공포와 위로, 아이의 시선과 어른의 그림자가 교차하는 이 서사는 서사적 민속, 기억의 문학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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