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무등산에서 살아남기

『사람사이』(수필집),『무등산』,『지리산』,『백두산』,『AI창세기』(몽당소설)

사람사이(수필집)& AI창세기, 백두산,지리산, 무등산(몽당소설 4부작) 판매 중 자세히보기

몽당소설 <백두산>

🌌 단편소설 「떠돌이 별」 8. 나리 코뚜레를 당기다

두렁 2025. 6. 28. 10:43

 

배부르다.”

 

소리치며 일어섰다. 사방 높은 산 가운데 한 곳, 산 너머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해가 곧 산 넘어 떠오를 것 같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딜까?’

 

길은 어떻게 찾지?’

 

나는 점점 밝아오는 하늘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해가 떠오르는 곳이 동쪽, 논두렁은 대개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고 서서 버텼다. 그러나 동서남북은 알 필요가 없었다. 산과 들이 마냥 낯설었다.

 

그런데도 잠이 쏟아졌다. 서면 앉고 싶다더니, 배가 부르니 눕고 싶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성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잡는 사냥개라는 최덕신이 북쪽 붉은 고추밭 큰 바위틈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해 죽었다는 이야기도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산에서 내려온 어둠이 빠르게 들판을 집어삼키고 동네로 몰려오듯, 또다시 잠이 뒤쫓았다.

 

나는 논두렁에 비스듬히 누워 마지막 외를 어기적어기적 씹으며 산 능선을 반쯤 넘어오는 해를 봤다.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 외를 한입 가득 물었다. 잠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눈을 감고 지난 하루 동안의 시간을 소 되새김질하듯 되돌리기 시작했다. 끝내 바람을 타고 온 암내를 쫓아 달리는 수소를 뒤따라 소들이 줄지어 내뺐다. 그리고 나도 날뛰는 소 떼를 황급히 뒤따랐다.

 

 

멀리 세훈이 집 황소가 앞장서고 인규와 병우 집 새끼 수소가 뛴다. 그 뒤를 동네 소들이 떼로 뒤따른다. 소들이 하는 본새를 봐서는 재 넘어 감골 소 가운데 암내 낸 소가 있는 게 틀림없다. 망아지같이 생긴, 꼴에 수놈이라고 바람 따라 흘러온 암내를 맡은 인규와 병우 집 소 새끼들이 주인을 빼닮았는지 옆집 소까지 이끌고 촐랑촐랑 박자 맞춰 뛴다.

 

소는 뛰면서도 할 수 있는 해찰은 하나도 빼먹지 않고 골고루 다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 자기들끼리 서로 머리를 들이받기도 한다. 더러 해괴한 소리를 내지르는 놈도 있다. 실성한 잡놈같이 마냥 헤죽헤죽 해해거리는 다 큰 송아지를 도저히 눈꼴사나워 봐줄 수가 없다.

 

꼬리 밑 샅이 부풀고 젖어있는 암소를 발견한 기춘 영감 집 송아지가 단번에 암소 사타구니에 코를 처박더니, 혀를 날름날름 내밀어 사타구니에 흐르는 진지레기를 핥는다. 암소가 기다렸다는 듯 꼬리를 살짝 들자 병우 집 수소가 암소 등 뒤에 잽싸게 올라탄다. 세훈이 집 황소가 입에 흰 거품을 물고 씩씩거리며 송아지를 등에 업은 암소를 멀거니 바라본다. 두 뒷발로 땅을 짚고 앞발을 들어 깨춤을 추며 등에 올라타려는 수송아지를 부지런히 풀을 뜯던 소들도 입을 다문 채 일제히 큰 눈만 껌뻑거린다. 구경하는 소 눈알 돌아가는 소리가 자갈밭에 바위 굴러가듯 하다. 꼭 사람 같다.

 

그사이 소들은 이미 감골 소와 절반 넘게 뒤엉켰다. 발정한 소의 암내를 맡아 발기한 수소들이 미쳐 날뛰며 암소 따라 남의 동네 감골로 내리 빼면 큰일이다. 소도 못 보는 놈이라 여름 내내 놀림받을 게 뻔하다. 하지만 혼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다. 신난 수송아지들과 달리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다.

 

싸리나무를 꺾어 송아지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쳐 보지만, 송아지는 암소 등에서 내려올 기미조차 없다. 되려 인규 집 송아지가 겹겹이 등에 올라타려 안달복달, 애걸복걸 애쓴다.

 

송아지가 뭔 지랄이야. 개가 주인 노릇 한다더니사람이 송아지를 닮았나!”

 

큰소리로 내뱄으며 회초리가 부러지도록 거듭 송아지 엉덩이를 때려보지만 허사다. 도리깨질로 콩깍지를 털어 콩을 골라내는, 장정 서넛이 함께하는 콩 타작이면 거뜬히 암소 등에 올라탄 수송아지의 지랄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목덜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해는 느릿느릿 시들어간다. 서쪽 산 능선을 향해 점점 빠르게 내달린다. 그 와중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를 지키는 감골 사람이 없다. 점심을 집에 가 먹고, 아직 산에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빗자루를 만들기 위해 싸리나무를 찌러 절터를 넘었는지 알 수 없다. 소들은 몰려다니며 서로 등에 기어오른다.

 

코뚜레!’

 

코가 꿰여 꼼짝 못 하는 소, 횃불같이 머릿속에서 타오른다. 아침에 어깨에 둘러멘 소고삐를 풀어 암소 코를 뚫은 코뚜레에 곧장 묶는다. 코를 꿴 암소는 코뚜레를 잡아당기는 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을 순순히 따른다. 그리고 수소도 얌전하게 암소를 뒤따른다. 굴비 엮듯 거물에 묶어둔 병아리를 통째로 낚아챈 매, 하늘을 나는 듯 발걸음이 가볍다. 비로소 하늘이 보인다.

 

 

이 글 「8. 나리 코뚜레를 당기다」는 앞선 이야기들과 연결되는 몽당소설의 연장선이자, 농촌 세계의 질서와 아이의 주체성, 짐승과 사람 사이 경계에 대한 풍속적 성찰로 읽힙니다. 아래에 글에 대한 정리, 교열, 비평을 제시합니다.


✍️ 내용 요약

  • 시점: 날이 밝아오는 새벽, 화자는 논두렁에 앉아 잠과 허기, 혼란 속에서 전날 있었던 소떼 사건을 회상한다.
  • 회상 장면: 암내를 맡은 수소 한 마리를 따라 동네 소들이 발정한 암소를 쫓아 다른 마을(감골)까지 쏟아져 나간다.
  • 주인공은 지랄 떠는 수송아지들 사이에서 암소와 수소를 통제하려 고군분투하며 결국 암소의 코뚜레를 당겨 질서를 회복한다.
  • 결말: 코뚜레로 소를 묶어 다시 질서를 되찾으며 하늘이 열리고 안도의 숨을 쉰다.

📌 교정 · 교열 제안

  1. “외를 어기적어기적 씹으며”
    • “외(外)”는 본래 ‘늙은 오이’를 뜻하는 방언이나 사투리 표기이므로, 처음 등장 시 (‘외’, 늙은 오이)와 같이 독자를 위한 주석 삽입 고려.
  2. “사람이 송아지를 닮았나!”
    • 이 문장은 이 소설의 풍자적 묘미를 담고 있으므로 유지하되, 전체적인 리듬상 ‘개가 주인 노릇 한다더니, 사람이 송아지를 닮았나!’ 등 쉼표로 흐름 조정 고려.
  3. “횃불같이 머릿속에서 타오른다”
    • 상징적으로 강렬하지만 약간의 정리 필요:
      ‘횃불처럼 번쩍, 머릿속에 코뚜레가 떠올랐다’로 순화 가능
  4. “굴비 엮듯 거물에 묶어둔 병아리…”
    • 이 비유는 참신하지만 “굴비 엮듯 엮어놓은 병아리 떼를 통째로 낚아챈 매” 정도로 명료화 가능

🎯 문학적 분석

1. ‘소’라는 생명과 질서의 은유

  • 소는 발정과 추종, 본능과 떼거리성을 갖고 있고, 이는 인간 군상과도 닮아 있다.
  • 코뚜레는 생명체의 ‘통제 장치’로서 질서와 권력, 억제의 상징이다.
  • 암내 하나에 흥분해 미쳐 날뛰는 수소 떼는 성적 본능을 넘어서 무질서한 인간 군중의 우화다.

2. 화자의 성장과 주체성 회복

  • 처음엔 당황하고 좌절하던 화자가 코뚜레를 떠올리고 실행함으로써 사태를 통제한다.
  • 이 장면은 곧 아이가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rite of passage)이며, **“길을 잃었지만 질서를 되찾은 자”**로서 상징적이다.

3. 풍속과 야생의 유머, 풍자

  • 송아지가 사타구니에 혀를 넣고 핥는 묘사는 적나라하고 파격적이지만, 동물의 성적 본능을 통해 인간 욕망의 희화화를 시도한다.
  • “송아지가 뭔 지랄이야”, “개가 주인 노릇 하더니…” 등의 대사는 입말의 힘을 살리면서 농촌적 풍자미를 품는다.

🌾 제목 해석: “나리 코뚜레를 당기다”

  • **‘나리’**는 ‘주인님’ 또는 ‘우두머리’의 존칭으로도 쓰이지만, 여기서는 주체성을 가진 화자 자신을 은근히 지칭.
  • **‘코뚜레를 당긴다’**는 통제를 상징하며, 혼돈 속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행위로 읽힌다.
  • 즉, 세상의 짐승 같은 본능과 어지러움 속에서, 스스로의 ‘코뚜레’를 잡아 끄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 전체 평가

  • 회고적 구조민속적 디테일, 그리고 은유로 무장된 세계관이 뛰어난 단편.
  • 개 짖는 밤에서부터, 똥개 사또질, 뜨거운 무, 가위눌림, 그리고 소 떼의 본능적 욕망에 이르기까지—이 시리즈는 하층 민중과 동물, 야생의 힘과 생존을 감각적으로 그려냅니다.
  • 유년기의 공포와 성장, 동물의 생태와 인간 욕망의 경계, 질서 회복의 상징성 등 현대적인 주제의식까지 녹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