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동네 수소를 찾지 못한 게 확실하다. 그렇다고 암소만 몰고, 수소를 포기하고 자기 동네로 넘어가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골목 낯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수소가 신자 집 암내 낸 소와 같이 있을 것 같다.
“나다!”
마루 아래 댓돌에 놓인 고무신짝부터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문 안쪽에서 호롱불 앞에서 그림자가 멈춘다. 그러나 방문은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내가 던진 돌멩이가 마루에서 또르르 공글러 마당에 떨어지자 비로소 방문이 열린다.
“가시나야, 마구에 수놈 숨겼지?”
신자가 마루에서 꼼짝도 안고 서 있다. 내가 몸이 달아오른 수소처럼 서둘러 돌담을 넘자
“소가 징그럽게 붙어 무서바 죽겼다 아이가~.”
마당에 내려온 신자가 박꽃같이 웃으며 코맹맹이 소리로 중얼거린다.
“괜찮다. 씨를 받는 중인 기라. 황소가 나만큼 실하다.”
“웃기고 자빠졌네.”
황소가 입에 흰 거품을 물고, 콧구멍에서 뜨거운 입김을 뿜는다. 나는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발랐다.
“내쫓아 버릴까?”
신자가 눈짓한다.
“누굴?”
“너하고 소하고 한 패거리 아이가?”
“머라카노!”
우리는 황소가 암소 등에서 내려오자마자 집 밖 골목길로 내쫓았다. 그리고 신자와 나도 황소를 뒤쫓아 집 밖으로 나왔다. 재 넘어가는 길가에 솔가지가 삭아 불쏘시개로 안성맞춤인, 해를 묵어 오래된 나무누리에 몸을 숨기고 황소를 지켜봤다. 토끼를 잡은 개를 삶아 먹듯, 씨를 주자마자 무용지물이 돼 집 밖으로 쫓겨난 황소가 어둠 속에서 코를 벌렁거린다. 황소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저녁 굴뚝에서 나온 밥 짓는 연기가 동네를 감싸 돌듯 황소 코에서 나온 입김이 나무누리 쪽으로 붙어 사그라든다. 달도 황소를 지켜보고 있다. 은빛 꽃가루를 하늘에 뿌려놓은 듯 크고 작은 별들이 동네에 내려와 땅에 떨어질 듯 빤짝인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두근거리던 가슴이 점점 빨리 뛴다.
“박가끼리는 혼례를 안 치른다 아이가….”
그때, 얄궂게도 횃불 하나가 나무누리 앞으로 다가왔다. 얼굴에 바짝 다가서는 횃불, 눈앞에서 왔다 갔다… 눈이 부시다.
놀라 눈을 떠보니, 떠오른 해가 머리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총총히 빛나던, 제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하늘을 떠돌던 별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무누리에 숨어서 본 소도 온데간데없고, 나 혼자 논두렁에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방금까지 본 것은 모두 꿈 속이었다.
나는 엉덩이에 뭍은 흙을 두손으로 부지른히 털며 논두렁을 타고 논 밖으로 나왔다. 내가 지난밤에 내려왔을 것만 같은 산으로 오르는 길, 동네 쪽으로 난 길 그리고 개울 건너 저편으로 가는 길… 가보지 않은, 처음 보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내 앞에 누워있었다.
나는 논두렁에 앉아 태평스럽게 지난밤을 되새기며 꿈만 꿀 수는 없었다. 독수리가 발톱에 꾀 채는 순간까지 밖이 훤한 길을 당장 걸어야 했다.
‘집으로 가는 길…?’
‘흐르는 물 따라 가보자!’
나는 개울을 따라 난 길로 들어섰다. 소똥구리 한 마리가 동글동글한 떡 모양의 소똥을 부지런히 굴렸다. 나는 밟지 않으려, 소똥구리를 돌았다.♧
🌾 똥을 굴리는 자들 – 「똥 굴리다」를 읽고
삶의 끝에서 다시 삶을 굴리는 인간의 은유
“소가 징그럽게 붙어 무섭다 아이가.”
“괜찮다. 씨를 받는 중인 기다.”
“웃기고 자빠졌네.”
토속어의 향연과 농촌의 밤, 땀 냄새나는 황소의 입김 속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편소설 「똥 굴리다」는 단지 소와 사람, 암내와 황소, 그리고 성(性)을 둘러싼 교미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현실을 사는 한 인간이 욕망과 무용, 기능과 쫓겨남, 생명과 폐기를 몸으로 체험하는 이야기다. 농촌이라는 무대를 빌려 존재론적 진실을 드러내는 강렬한 은유극이다.
🐃 씨를 주고 내쫓긴 황소, 그리고 인간
황소는 욕망의 도구다. 암소 위에 올라타는 순간에는 환희가 있지만, 그 순간이 끝나자마자 ‘쫓김’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동물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 특히 기능을 잃은 존재가 어떻게 폐기되고, 무의미한 존재로 취급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작품 속 화자도 예외가 아니다. “너하고 소하고 한 패거리 아이가?”라는 신자의 말은, 화자가 자신도 모르게 황소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자각을 끌어낸다. 황소는 울부짖지 않지만, 마루 아래에서 입김을 뿜는다. 인간도 침묵 속에 감정의 ‘입김’을 내뱉는다.
🌒 꿈인지 생시인지 – 현실을 깨우는 새벽의 빛
주인공은 꿈을 꾼다. 아니, 우리는 독자로서 그가 꿈을 꾼 것인지, 현실을 겪은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이 경계의 모호함이 작품을 더욱 서늘하게 만든다. 욕망은 꿈처럼 강렬하지만, 현실은 무겁게 짓누른다.
꿈에서 깨어난 자는 더 이상 욕망의 언어로 살 수 없다. 논두렁에 비스듬히 누운 화자, 그 위를 내려다보는 해, 사라진 별빛과 황소. 모두 지나간 꿈의 흔적이다.
그의 앞에는 길이 놓여 있다. 재를 넘는 길, 동네로 향하는 길, 개울을 따라 흐르는 길. 그는 개울을 따라 난 길을 선택한다. 그 길에는 소똥구리 한 마리가 있다. 소똥을 굴리는 작고 집요한 생명. 이 장면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똥을 굴리고 있느냐고.”
🪵 똥, 가장 낮고 가장 깊은 생명
제목 ‘똥 굴리다’는 단순한 농촌적 표현이 아니다. ‘똥’은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것 없이는 생명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것을 굴리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한다.
소똥구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존재 자체가 외친다. “쓸모없는 것을 굴리는 자가 삶을 유지한다.”
이 한 문장은, 지금 이 시대에 ‘버림받은 자들’, ‘용도 폐기된 자들’, ‘은퇴하고 잊힌 자들’, 혹은 ‘처음부터 길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따뜻한 통찰을 던져준다.
🧠 문학은 가장 낮은 데서부터 생명을 찾는다
이 작품은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농촌의 정서를 닮았다. 그러나 「똥 굴리다」는 서정 대신 풍자, 이상 대신 본능, 죽음 대신 생명의 덧없음을 택한다.
또한 카프카의 『변신』과도 닮아 있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와, 쫓겨나는 황소. 쓸모가 없어진 자에 대한 세상의 냉혹한 응답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똥 굴리다」는 끝까지 삶을 굴리는 쪽을 응시한다는 점이다. 『변신』의 그레고르가 결국 죽음으로 사라진다면, 이 소설의 화자는 길 위에 선다. 그리고 다시, 굴러간다.
✍️ 맺음말 – 굴리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똥 굴리다」는 익살스러운 구어체, 향토적 배경,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리듬을 통해 **우리 모두가 ‘쫓겨난 황소’이며, 동시에 ‘소똥을 굴리는 존재’**라는 사실을 되묻는다.
똥은 삶의 끝에서 나온 것이지만, 다시 생명의 시작이 된다. 그러니, 우리는 굴려야 한다. 지금 이 똥 같은 현실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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