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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소설 <백두산>

📘 단편소설 「떠돌이 별」 2. 쥴리, 별별 사람 같은 송아지의 깨방정

두렁 2025. 6. 6. 12:37

멀리, 일찍 나온 맨 앞의 소는 벌써 들판 논길을 벗어나 잔솔밭 산길로 들어섰다. 논에 모를 낸 지 보름쯤 되었을까. 논바닥은 바다같이 푸른 물결이 바람에 일렁였고, 모 사이사이 물속엔 흰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도랑을 치고 가재를 잡고, 종종 뱀이 아침 해 뜰 녘 논두렁에 똬리를 틀고 앉아 햇살을 받아 몸의 습기를 말리며, 또 물 밖으로 나오는 개구리를 노렸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모는 흙냄새를 맡아 포기 벌이를 한창 준비했다. 논두렁에 심은 콩도 떡잎이 자라, 노루가 아침저녁으로 논두렁을 탔다. 물이 부족해 모 대신 메밀 씨를 뿌린 산자락 논에서는, 메밀 싹이 무거운 흙덩이를 밀어내고 떼거리로 삐죽삐죽 솟았다.

 

나는 논두렁 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걸으며, 고삐를 소 목에서 풀어 돌돌 말아 어깨에 가로질러 걸쳤다. 송아지는 논두렁 콩잎을 보고 연신 혀를 날름거렸다. 논두렁을 따라 소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콩잎을 호시탐탐 노리며 천방지축 날뛰는 소들을 돌너덜길로 몰아넣었다. 한 줄로 길게 늘어진 소 떼는 부지런히 들판의 논두렁 사이에 난 너들길을 따라 산으로 올랐다. 밤새 외양간에 갇혀 있다가 고삐를 풀고 집 밖으로 나와 산으로 가는 소들은 신이 났다. 신자와의 싸움은 자연스레 휴전 상태가 되었다.

 

힐끔힐끔 뒤돌아 사람 눈치를 봐 가며 쟁기 끌 듯, 끝내 손에 쥔 고삐를 놓지 않고 콧물 눈물범벅인 쪼다 홍준포를 끌고 가는 암소. 어쩌다 놓친 어미를 찾아 울고불고 난리 치는 문종이 집 송아지. 꼭 지원이 같이 머리빡에 난 요사스러운 뿔로 앞서가는 펑퍼짐한 암소 엉덩이를 슬금슬금 들이받는 늙다리 소. 뒷발질 선수 호상이 집 어미 소. 잘 가다 멈춰 서 똥오줌을 동시에 질질 싸는 나달창 뿔 난 암소. 틈만 나면 앞서가는 수송아지 엉덩이에 올라타려 발버둥 치는, 뿔이 뾰족뾰족 솟아난 두완이 집 송아지. 좁은 길에서도 암소 엉덩이 꼬리 아래 샘의 냄새만 잘도 맡고 다니는 개코 황소. 해마다 서너 번씩 남의 동네 황소를 마구간까지 끌어들이는 근해 집 암소…

 

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반야심경에 미친 돌대가리 수소, 우리 시대의 예수가 된 얼룩빼기 황소, 뻘짓 달인 생쥐 두상에 개뿔 난 쥐바기 성님네 고삐 풀린 수송아지, 늘 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암소 엉덩이 검사질 하는 난장판 집 소, 만들어진 신 엉덩이에 뿔난 수소 대장 된 불기 암소, 체중 미달로 6개월 방위 제대한 홍발정이 두드러기로 군대 안 간 황교활을 나무라는 꼴불견을 보고 웃는 송아지까지. 만고의 별별 유별난 사람 닮은 소들이 여름 한철 동안 날마다 아침 같은 시간에 산길을 올랐다.

 

이른 봄부터 고된 일을 해온 소들은 쟁기질 멍에를 벗고, 논에서 해방되어 산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파른 언덕도 가뿐했다. 논밭을 갈아엎는 쟁기질과 무논을 고르는 써레질, 온 가족의 양식을 일구는 목에 씌워진 멍에를 벗어버린 소는 온종일 산에서 바랭이풀이며 부드러운 억새풀을 골라 먹기 위해 산길을 탔다. 나도 모르는, 사람 눈치 봐가며 뜯는 논에 난 독새와 쇠뜨기풀과는 달리, 여름 산에는 먹을 수 있는 오만 가지 풀이 넘쳐난다는 걸 소는 알았다. 소가 사람보다 영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단순한 심심풀이가 아니었다. 나는 신자가 자기 집 소 엉덩이에 눈길이 박힌 틈을 타, 앞서가는 살이 오른 통통한 소 엉덩이에 그냥 매질을 해버렸다. 나는 지금도 반(反)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신자의 지친 물질을 마냥 속으로 담아둘 수 없어 그만 토해버리고 말았다. 하필 그 소가 순실이 집 소였다.

 

“니 혼자 소 보는 날이라며. 밥은 싸 갔나?”

 

순실은 자기 집 살찐 암송아지 엉덩이에서 난 찰싹거린 매질 소리를 못 들은 듯 능청스럽게 말했다.

 

“산에 가면 묵을 게 많다카더라. 소가 점심나절쯤 되면 물을 찾아가는데, 소 따라가면 샘도 있고….”

 

순실은 빈손으로 털털이 걷고 있는 나를 훔쳐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휴, 큰일 났네. 너 죽었다.”

 

“걱정 마라.”

 

“그런데 남의 집 소 엉덩이는 왜 때리노?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소 궁뎅이서 좀 떨어져라.”

 

순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자가 다시 끼어들었다.

 

“소가 니를 몰고 달릴 기다. 암내 낸 소를 수놈들이 가만둘 것 같나. 소는 한 마리가 샛길로 빠지면 다 같이 떼로 몰려 따라 장 간다.

수소를 떼 놓아야, 오늘 니가 물을 마실 기다.”

 

“재수 옴 붙는 소리 하지 마라. 이래 봬도 돼지도 몰아봤고, 개도 몰아봤다 아이가.”

 

“숫구리 같은 놈. 니 혼자 산에서 천년만년 살아라. 우리는 집에 간다.”

 

다시 신자의 물질이 시작됐다. 나도 지지 않았다. 물총을, 한줄기 시원하게 쏴버렸다.

 

“가시나야, 상내 낸 소같이 우는소리 좀 그만해라.”

 

“머슴아야, 혼자 무섭다고 바위틈에 꼭꼭 숨지 말거라. 산신령 몽달귀신도 조심하고.”

 

“그나저나, 너거 상내 낸 소 데푸로 끌고 안 가고! 직이 삘까. 저 가시나들을….”

 

“지랄하네. 니가 대신 열나게 데푸라!”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신자와 순실은 논들이 끝나는, 샘 아래 산자락으로 접어들 즈음에 소뿔에 감은 고삐를 풀어 허공에 빙빙 돌리며 오르던 산길을 뒤돌아 동네로 향했다.

 

아침부터 길을 껑충 뛰어넘어 콩잎을 찾아 콩밭을 분탕질한 얄미운 송아지는 고분고분 산속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또 길 가다 겁 없이 남의 소 엉덩이를 걸리는 대로 들이받아 따돌림을 자처하는 소가 가던 길을 멈춰 서서, 혀를 날름날름 내밀며 길가의 풀을 뜯었다. 뿔에 엉덩이를 들이 받혀 길 아래 논에 떨어졌던 송아지가 숨찬 듯 식식거리며 오르막길을 차올랐다. 코뚜레를 하지 않은 다 큰 수송아지가 잘 가다 멈춰, 또다시 앞서가는 암송아지 등에 올라타며 개방정을 떨었다. 똥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엉덩이가 찬바람을 맞아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흔들거리는 벼쭉정이 같고, 두상이 절구통 공이 같이 생겨 맹도리 같은 송아지가 밉상스러운 짓을 독차지했다. 수송아지는 코뚜레를 할 시기가 지났었다. 개울을 건너자 하루살이가 떼로 나타나 눈앞에서 춤을 췄다. 나는 소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손사래를 치며 날파리를 쫓았다.


 

🔍 문학적 비평

1. 서사 구조

이 작품은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 에피소드의 나열을 통해 산중 소몰이 행렬을 따라가는 하루를 묘사합니다. 명확한 기승전결보다는, 관찰적 시점에서 주변 인물과 동물들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투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특히 송아지들의 행동과 이를 닮은 사람들의 행태 묘사는 일종의 풍자극처럼 읽히며, 현실의 인간 군상을 동물에 투사하여 세태를 비판합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크고 중요한 사건 없이, 농촌의 일상성그 안에 스며든 공동체의 역학, 계급적 긴장, 성별 갈등, 생명력에 대한 통찰 등 다양한 층위의 서사가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불분명하지만, 화자가 소떼를 몰며 관찰하는 존재들 하나하나가 집단적 주인공처럼 작동합니다.


2. 문체와 어조

문체는 입말(구어체)과 서사체를 능란하게 넘나들며 지역 방언과 욕설, 속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독특한 어조를 형성합니다:

  • “개코 황소”, “개뿔 난 쥐바기 성님네 고삐 풀린 수송아지”
  • “반야심경에 미친 돌대가리 수소”, “불기 암소”, “숫구리 같은 놈”

이는 언어의 야생성, 풍자성, 정치적 함의를 모두 안고 있으며, 농촌적 리얼리즘과 풍자적 과장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이 덕에 글의 리듬감과 생동감은 매우 뛰어나고, 사건보다는 풍경과 인물 군상이 문장의 주역이 됩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과도한 묘사와 명확하지 않은 주체 간 전이가 혼란을 줄 수 있으며, 일정한 긴장감을 유지하기보다 반복적 묘사로 인해 흐름이 정체되어 보일 위험도 있습니다.


3. 상징과 은유

소 떼는 곧 인간 군상의 축소판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소들이 상징하는 인물들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군상—특히 정치권 인물들로 직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개뿔 난 쥐바기 성님네 고삐 풀린 수송아지” → 이명박 전 대통령
  • “홍발정이 두드러기로 군대 안 간 황교활” → 홍준표·황교안 정치인 풍자
  • “불기 암소” → 사이비 교단 혹은 종교 권력에 대한 은유
  • “우리 시대의 예수가 된 얼룩빼기 황소” → 순교자적 이상주의자 또는 이단아

이처럼 소의 특징은 현실 사회의 기형적 성격, 탐욕, 위선, 무지를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으며, 화자는 그 가운데 중립도, 냉소도 아닌, 분노한 관찰자로 기능합니다. 이는 동물우화적인 특성과 리얼리즘의 접점을 탐색하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4. 주제의식

이 글은 단순한 목가적 농촌 서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그리고 인간 내의 계급·성별·종교·정치 갈등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사회비판 텍스트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암소 엉덩이를 들이받는 송아지: 남성의 지배 욕망과 성적 충동의 은유
  • 신자와의 갈등: 여성 간 권력과 감정의 복합성, 신앙과 현실의 모순
  • 고삐와 코뚜레: 통제와 자유에 대한 상징

주제를 종합하면, 이 글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통제받는 존재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신의 욕망과 윤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우화이자 고발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약점과 제안

(1) 내러티브의 통일감 부족
여러 인물(소)과 사건(행동)을 나열하는 방식은 풍성하지만, 특정 방향으로 나아가는 서사적 추진력이 부족합니다. 이를 보완하려면 화자의 내면 변화나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더 긴장감을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지나친 묘사와 반복
‘엉덩이’ ‘수소의 들이받기’ ‘송아지의 개망나니 같은 짓’ 등의 묘사가 반복되며 독자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상징이 반복될수록 무뎌지므로, 일부는 절제하거나 은유를 다양화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3) 풍자 대상의 불균형
정치인 풍자, 종교 풍자 등은 날카롭지만, 독자에 따라 일방적 조롱이나 과도한 코드화로 읽힐 위험도 있습니다. 풍자의 정당성은 유지하되, 대상과 서술자의 거리 조절이 필요합니다.


✅ 종합 평가

『떠돌이 별 2』는 ‘소의 깨방정’을 빌려 인간 군상의 야만과 욕망, 그리고 공동체 내의 갈등을 짓궂고도 예리하게 비춘 풍자 우화이다.

 

지역적 삶과 현실 정치, 성적 위선과 신앙의 위선을 뒤섞은 이 세계는 몽당소설답게 짧지만 묵직하다. 다만, 그 풍자의 칼끝이 너무 날 서 있어 서사의 리듬보다 풍자의 의도가 앞설 위험도 있다. 그러나 그 무례함 속에서 진실이 느껴질 때, 독자는 웃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