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무등산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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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소설 <백두산>

📘 단편소설 「떠돌이 별」 3. 데푸라

두렁 2025. 6. 6. 12:44

탑골 샘에서 소가 먼저 물을 마시고 일으킨 흙탕물이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침에 가장 먼저 산에 올라간 용이 산꼭대기로 물러나는 뿌연 안갯속에서 나타났다.


“오늘 소가 많다. 그런데 니가 소 보나?”

 

“와?”

 

“상내 낸 소도 있는 것 같고, 옆 동네 감골서도 열심히 올라오고 있더라!”

 

동네를 향해 뛰어 내려가는 용이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용아, 오후에 일찍 좀 와라!”

 

용이 개에게 쫓기는 노루처럼 돌너덜길을 내리 달려 휑하니 산모퉁이를 돌았다. 산허리를 감싸 둘러 낀 아침 안개로 봐서는 여름 장대비가 내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길고 긴, 무더운 하루가 슬슬 걱정됐다.

 

나는 탑골 샘의 납작한 무릎 받침돌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얼굴을 반쯤 물속에 담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로 채운 물배로 하루해를 넘겨 보려는 듯, 물동이로 장독 물 채우듯 물을 뱃속에 퍼 담았다. 목줄을 타고 넘어갔던 물이 다시 목구멍에서 꺼이꺼이 되올라왔다. 윗몸을 지탱한 물에 짚은 두 손이 시렸다.

 

샘물은 여름에는 차가운 김이, 겨울에는 따뜻한 김이 솔솔 피어나 일 년 내내 얼지 않았다. 물맛 또한 늘 기차게 좋았다. 종종 친구들과 선착순으로 물을 마신 뒤 모래톱에서 송송 솟아나는 샘물에 손을 담가 누가 오랫동안 넣고 있는지 내기도 했었다. 하나, 둘, 셋, 넷…, 한여름 샘물 속에 손을 갓 넣을 때는 시원했고, 조금 지나면 손이 시렸다. 그러다 곧 아카시아 가시가 콕콕 찌르듯 하다 백을 셀 때쯤에는 손가락이 뻣뻣해졌고, 손등이 더는 아프지 않게 될 때 손을 물속에서 화들짝 뺐다. 백을 아예 못 세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그때 샘에서, 눈으로 읽고 나무막대기로 땅에 쓰지는 못해도 입으로만 백까지 헤아리는 법을 엿들어 배웠다.

 

햇볕에 말리기 위해 마당 덕석에 널어 둔 콩을 몰래 훔쳐 먹은 소 배 속의 콩이 불어나며 점점 늘어나는 소 뱃가죽같이, 방금 마신 뱃속 물이 꾸르륵꾸르륵 소리를 냈다. 엉거주춤 샘을 나와 다시 소 떼를 뒤따라 산을 올랐다. 마음만 바쁘지,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뱃속 물이 목을 꺾꺾 되올라왔다. 신물이 콧구멍을 타고 밖으로 나와 기와지붕 낙숫물 같이 뚝뚝 떨어졌다.

 

사실 암내 낸 소를 온종일 따라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삽짝을 나와 산으로 오르는 소 떼를 보자마자 지레짐작 겁을 먹었었다. 수놈들이 암내 낸 소 뒤꽁무니를 쫓아 산을 헤집고 돌아다니면, 검정 고무신이 벗겨지지 않도록 싸리나무껍질이나 칡넝쿨로 단단히 묶어도 허사라는 걸 눈치챘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십중팔구 싸리나무 꼬챙이에 새 검정 고무신이 찔려 구멍이 날 게 뻔했다.

 

무엇보다 한 마리의 소라도 잃어버리면 큰일이었다. 간혹 산에서 송아지를 낳아 아침보다 저녁에 한두 마리 늘기도 했었다. 따라서 틈틈이 소 숫자를 파악해야 했다. 소 지킴이는 늘 아침에 산에 올라온 소가 몇 마리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했다. 아침에 센 숫자와 해가 머리 위에 왔을 때, 그리고 해거름 녘 집으로 돌아올 즈음에 센 숫자가 각각 다른 날 밤에는 어김없이 동네 어른들이 소를 찾아서 횃불을 들고 산을 올랐었다. 종종 밤에 마구간이 텅 빈, 집에 돌아오지 않은 소를 찾아 사람들이 산으로 오르는 것을 봤었다.

 

“사람도 못 나오는 절간 싸이로에 빠진 소를 중놈이 회 처 묵었다 카더라. 마지막 남은 산사람이 잡아갔다는 말은 거짓이고, 산에 사는 그놈이 중이 아니고 백정이라는 말도….”

 

동네 길가에 흘러 다녀 한 귀로 주워들은 전설 같은 말, 산에서 행방불명된 소가 영영 마구간에 나타나지 않은 해도 있었다기에 그 말들을 믿었다.

 

실은 앞서서 어정거리며 가는 소가 상내를 낸 것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다 큰 암소가 누굴 찾아 부르듯 둘레둘레 기웃거리며 “무우~” 하고 뜬금없이 울고, 또 잘 가다 삼천포로 빠지듯 짐짓 멈추어 움찔거리며 오줌을 찔끔찔끔… 십중팔구 암내 난 소가 틀림없다고 동네 형들이 알려줬다.

 

며칠 전 이른 아침이었다. 옆집 노옥순 아지매가 콩을 두 되 가져와 뒷집 혼자 사는 주덕술 할배에게 내밀며 힘을 길러라 했다.

 

“소에게 좀 삶아 먹여….”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말을 끝맺지 못했다.

 

“뭔 일로 날도 더운데 소죽을 끓여 저 짱짱한 놈에게 주라는가?”

 

“암소가 밤새 어찌나 울어… 하룻밤만 좀 빌려주면 내년 봄에 첫 새끼를 낳을 것 같습니더.”

 

“지금 소를 몰고 와보게. 콩은 사람이 먹고 힘을 써야지.”

 

“아직은 상내가 좀 덜 나, 이른 시간 같기도 하고….”

 

“주인이 모르면 누가 알겠는가.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지. 소가 하는 걸… 뭘 그러는가!”

 

아지매가 허둥지둥 사립문을 나가자 할배가 황소 마구간 빗장을 풀며 중얼거렸다.

 

“여편네가 아침부터 와서 밤중에 연장을 빌려주라느니, 생 고문을….”

 

황소는 할배의 가보, 중요한 연장이며 이웃이 늘 탐내는 물건이었다. 그 보물이 그렇게 옆집 암소가 밤새 울은 아침에 동네 앞 큰길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애썼다. 성급한 황소가 개울 건너 앞들로 나가는 길에서 암소 뒤에서 치올라 타려고 두 앞발을 들고 거듭 용을 썼다. 할배가 보다 못해 허공에 손사래를 두어 번 쳤다.

 

“바꿔! 수놈 니가 위에서… 바보 멍칭아, 내려다보고 해야….”

 

개울 건너 논두렁에 앉아 소들을 지켜보다 그만 입 밖으로 외친 머슴 나배의 훈수를 눈치챈 듯, 암소가 방향을 틀어 자연스럽게 엉덩이가 들린 자세를 취하자 수소가 냉큼 달려들어 끝내 하나가 되어 씨를 품었다. 할배가 비로소 흰 턱수염을 매만졌다. 신자는 부엌 문짝 뒤에서 빠끔히 내려다보았고, 용이도 골목에서 그날 소 씨름을 구경했다. 나도 봤다.

 

샘을 지나 산에 올라가는데 앞에서 잘 가던 소가 갑자기 멈춰 섰다. 하마터면 가분지가 탱글탱글 달라붙은 소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처박을 뻔했다. 밤새도록 피를 빨아 배가 구슬처럼 부풀어 넓적다리 안쪽에 박쥐같이 덕지덕지 매달려 있는 소가분지와의 박치기를 가까스로 피했다. 박치기로 터진 가분지 피 칠갑보다 무서운 뒷발질을 여간해서 하지 않는 소라 다행이었다. 자기 집 소가 내지른 뒷발질에 정통으로 차여 정강이뼈에 금이 가 소똥을 고약 같이 바른, 덩치가 황소만 한 무성이 절뚝거리며 다니는 것을 봤었다. 그는 눈 깜짝할 찰나에 날아든 소 뒷발질에 차였다며 덩칫값도 못하는 소리를 늘 했었다. 뒷날 무성이 젊은 사기꾼 수산업자에게 정통으로 차인, 그 전주곡 같았다

 

1. 문학적 분위기와 묘사

  • 현장감과 생생한 묘사:
    소가 물을 마시고 흙탕물이 가라앉는 순간부터, 산에 오르는 과정, 소 떼의 움직임, 샘물의 차가움과 손가락의 감각 등 디테일이 매우 풍부해서 독자들이 현장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특히 ‘아카시아 가시가 콕콕 찌르듯’ 손가락이 시린 감각 묘사는 탁월하다.
  • 자연과 인간의 조화:
    산과 물, 소와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인간이 자연 속에 깊이 뿌리내려 살아가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안개, 물맛, 산길 등 자연 환경 묘사가 정서적 배경으로 훌륭하다.
  • 감각적 표현의 장점:
    ‘목줄을 타고 넘어갔던 물이 다시 목구멍에서 꺼이꺼이 되올라왔다’ 같은 표현은 물리적 행위와 내면 감각을 동시에 전달해 글에 생동감을 더한다.

2. 주제와 분위기

  • 긴장감과 불안감:
    암내 난 소, 소 떼를 잃어버릴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 싸리나무 껍질로 고무신을 감싸는 장면 등 소를 돌보는 사람들의 긴장과 책임감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 공동체와 전통:
    동네 사람들이 횃불 들고 산으로 오르는 모습, 마을 사람들 사이의 전설 같은 이야기, 그리고 소와 마을 어른들의 관계는 공동체와 전통의 의미를 부여한다.
  • 삶의 단면과 고된 노동:
    하루의 무더운 날씨, 산길을 오르는 고된 노동, 소를 챙기는 일상의 무게가 글 전반에 흐르며, 농촌의 삶이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3. 문체와 서술

  • 회상적이고 서정적인 문체:
    서술자가 경험한 과거를 회상하듯 담담하고 서정적인 어조가 느껴진다. 문장 흐름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내러티브가 흥미를 유발한다.
  • 방언과 구어체의 활용:
    일부 구어체와 방언(예: ‘니가’, ‘했습니더’, ‘바꿔!’)이 현실감을 살리고 있으나, 지나치게 많이 반복되면 독자에 따라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 복합적 문장구조:
    긴 문장이 많아 때로는 읽는 속도를 늦출 수 있으나, 이는 자연과 상황을 깊이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군더더기 없이 다듬으면 더 호흡이 좋아질 듯하다.

4. 아쉬운 점 및 개선 제안

  • 내러티브의 중심 흐름 강화 필요:
    현장 묘사와 세부 감각 표현은 뛰어나지만, 독자가 이야기의 ‘핵심 사건’이나 ‘주제적 갈등’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소가 상내 난 것인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긴장감을 더 명확히 드러내면 좋겠다.
  • 인물들의 심리 묘사 보완:
    소 지킴이, 할배, 아지매 등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각자의 심리나 갈등이 조금 더 구체적이면 독자의 감정 이입이 깊어진다.
  • 대화체와 서술 간 균형:
    대화체가 자연스럽고 생생하지만, 서술과 대화 사이의 리듬 조절을 통해 더욱 유려한 전개가 가능하다.

5. 종합 평가

이 원고는 농촌과 자연, 공동체의 삶을 생생하게 포착한 서정적이고 현실적인 작품이다. 감각적 묘사와 현장감은 뛰어나며, 소와 사람 간의 긴장과 애정, 농촌 일상의 무게가 잘 표현되었다. 다만 이야기의 갈등과 중심 서사를 좀 더 선명하게 하고, 인물 심리와 대화-서술 간 리듬을 조금 다듬는다면 작품의 힘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